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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명제

by 링마이벨 2019.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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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z”의 번역 – 독일어–영어 사전

Satz

noun [ masculine ] /zaʦ/ Satzes | Sätze /ˈzɛʦə

Noun[edit]

Satz m (genitive Satzes, plural Sätze)

  1. sentence
  2. (mathematics) proposition, theorem
  3. set (matching collection of similar things)
  4. (music) movement
  5. (tennis) set
  6. jump, leap
  7. sediment, grounds (something that has precipitated from a liquid)
  8. typeset

sentence에 매우 가까운 독일어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문장이라는 말이 오히려 명제라는 말과 혼동이 된 듯하지만 말이다. 명제라는 말이 독일어로 보면 

Satz [zats] 듣기 어휘등급별 3개 단어장 저장:  남성 (Lehrsatz) 정리, 명제, (Grundsatz) 공리, 원칙, (Glaubensatz) 교의(敎義), 교리, 격언, 금언, 논제, 주장/ 남성 (Sprung) 껑충 뛰기, 도약, 비약, 큰 걸음/ 남성 (Bodensatz) 찌꺼기, 앙금, 침전물 세개의 표현으로 인용될수 있다. 낱말들이 그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음악이 전체를 대변하게 하나로 인식하듯이 낱말들의 혼합물이 아니다. 물리적 혼합물은 아니지만 화학적 혼합물은 가능성으로 표현되어 질 수 있다. 

마치 보울트 너트가 하나의 결합형태로 만들어져서 하나의 물건을 대상에 접합시켜주는 역할을 하듯이 사다리 하나하나도 사다리를 이야기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화학적 형태의 화합물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정은 상징들에 의한 관한 기술일뿐 그 상징들에 의해 지징된 것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진술하지 않는 규정에 본질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기호는 오리혀 싱징에 의해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는 것이다. 기호에서 상징이 표현하는 바는중요한 상징일듯 싶다. 올바른 한어가 전체 문장을 대변할 수 있듯이 한 단어가 모든것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다. 우리는 항상 전체에 대한 기여부분으로 모든 학문적인 모든 존재목적을 이야기 하지만 가끔은 한단어가 문장이나 명제보다 중요한 화두나 이슈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만약 현재 우리가 21세기 지금은 문화적인 경향이나 사조를 한 단어로 이야기 하라고 하면 우리는 자애 스르로를 사랑하는것이 돼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에게 무한적인 애정과 스스로를 위로하고 아끼는 것은 물론 우리들의 나를 위한 물리적 위안을 삶의 목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가지는 상징과 대체라는 방식에 있어서 만약 그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단어가 그 상황과 존재의 모든 의미를 함축적으로 한 단어로서 대치되는 방식은 실로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왜냐하면 그 상징이 그 전체를 대변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어려움을 우리는 존재와 상징의 Gap Difference라 말할 수 있다. 그 차이는 실제로 언어가 가지는 한계를 분명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러한 단어의 상징외에 다른 상징이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내가 지금 배고프고 외롭고 낙담해 있다면 지금 나의 상황을 기아라는 말로 굶주림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나는 너무 많은 감정과 기분을 가진 복합체 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장 그 상황에 맞는 언어체계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의문이다. 

본질이라는 것 그러면 전통의상이 그 민족의 문화와 사상을 대변하는 대체표현수단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 의상이 그 민족의 모든것이라고 판단하는 상당히 개인적으로 보면 불행이지 않을까? 어떤 단체안에 깃들여 있는 그 날씨와 기후를 대변하고 있고 그러한 민족의 의상은 상당부분 민족과 민족을 구분지는 차이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의상이 개인적인 차별의 요인이라는 부분으로 결론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어떤 한 개인의 차별적이고 독자적인 삶의 흔적들은 묻히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이악보를 보고 감흥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악보가 언어일까? 아니면 연주가 언어가 돼는 것일까? 그럼 이 악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악보도 연주도 별개의 언어로 인식한다면 이 부분의 대한 논쟁은 사라질 것이다. 시간차의 의해서 느끼는 인식의 단계를 우리는 다 같은 언어로 인식하는 것이다. 

기러기라는 한자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 저 안자는 의사소통이지 그림이 주는 그러한 복합적인 상상력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면, 안에는 자유로움이 존재하는가? 

철학은 말하자면 흐리고 몽롱한 사고들을 명료하게 하고 명확하게 구분짓는 것이다. 철학의 결과는 철학적 명제들이 아니라 명제들이 명료해 지는 것이다. 다윈의 일논이 자연과학의 다른 그 어떤 가설보다고 더많이 철학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철학은 생각될 수 있는 것을 구분 짓고, 그로써 생각될 수 없는 것을 구분 지어야 할 것이다. 철학은 안으로부터, 생각될 수 있는 것을 통하여, 생각될 수 없는 것을 한계 지어야 할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나는 철학을 너무도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철학에 대해서 이토록 간단 명료하게 이야기 해주는 명제는 없어 보인다. 철학과 과학의 경계를 이야기 하기도 하고 서로의 영역이 구분돼어진 부분과 해야할 일들에 대한 단박하게 정리한 것을 일찌기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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