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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퍼스트레이디

by 링마이벨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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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만의 아내, 프란체스카 도너(1900-1992): 92세의 연세로

프란체스카 도너 이승만의 두번째 부인 한국인명으로 이금선 이부란으로 1931년대에 오스트리아빈에서 당시 이혼했던 도너와 만나 결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875년 태어난 이승만이 1900년 태어난 도너를 1934년 만나 결혼하였으니 이승만 나이 59세에 결혼하였구나! 일제강정기 혼란해 독립운동차 오스트리아 갔다가 UN참석해 결혼하였으니 결혼이 그리 급했나!라는 생각도 한편든다. ㅋㅎ
이승만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치인 윤치영의 공보비서로 돈암장을 출입했던 최기일은 그를 상당히 인색하고 냉정하다고 평가했다.
최기일에 의하면 그는 '매우 인색한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이 박사의 생신날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집오리고기, 닭고기, 쇠고기 등 온갖 종류의 귀한 식품들을 가져왔다.[6]' 그러나 '그녀는 남은 음식을 돈암장 직원들과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일부 음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결국 1주일 후에 음식들이 상했기 때문에 그 전부를 내버려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협상, 좌우합작론을 주장하다가 전향하여 이승만을 찾아온 안재홍을 무시하고 냉소적으로 대했다. 이를 본 최기일은 '안재홍 씨가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푸대접을 받고 가시는 것을 보고 나는 조선 사람으로서 분한 마음이 들었다.[6]'고 증언한 바 있다. 윤치영임영신은 "이박사님이 너그러운 성품을 가진 한국 여성과 산다면 좋을 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한탄하였다 한다.[6]이승만의 비서인 박용만은 그녀와 수시로 충돌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이승만 박사가 괄괄한 성품의 첫 부인과 이혼한 이후 그녀와 결혼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이승만이 평생 후덕한 성품의 여성과 결혼하지 못했던 것을 한탄했다. 어느 정도 진실과 마주하기를 대하면 좋았을 것을 가장 근처에서 보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아주 의미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1919년 이 사진을 찍은 여자애가 지구 반대편에 대통령이 돼었다는 것은 아마도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카레이서 남자와 결혼했던 이가 이번에는 지구 반대편 50대말의 이승만이라는 남자를 만나 것도 임시정부의 대표로서 일제강정기 시기에 이해가 안돼는 대목이 한둘도 아니고 더구나 상식적이지도 않다.

2. 윤보선의 아내, 공덕귀(1911-1997)
경상남도 통영시 어찌보면 역대 퍼스트레이디중 가장 진보적이라고 난 생각한다. 시대적 반영의 결과라고나 할까! 성이 공씨이고 완전히 중국의 후손이고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일본유학하고 노무 일찍 민주화와와 진정한 독립을 원했던 부부로 국민들이 대통령을 따라갈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임오군란 일제가 구식군대를 강제 해선했을 때 그 구식군데에 복무했다고 하니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을 듯 하다. 아마도~~40년 열심히 공부하고 신학을 위해 유학을 포기하고 결혼 만약 결혼않고 지속적으로 공부를 했다면 대한민국 신학의 선구자가 돼었을 텐데…사회의식과 민주화에 대한 기본적인 열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박정희의 아내, 육영수(1925-1974)


영부인에서도 왜 최고로 손꼽힐까? 충청북도 옥천 아버지는 대지주였고 본처와 3명의 첩아래 22명(12남 10녀)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거기 본처의 1남3녀중 들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육종완은 개화사상가이자 소설가였다고 하니 다복한 집에서의 복잡함과 문학적 감수성을 받았다고 상상할 수 있다. 다가구 4명의 부인 22명이니 이후에 삶의 많은 지침이 돼었을 곳으로 본다. 재혼인데 아버지가 무지 반대를 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4명의 부인에서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 어찌보면 결혼을 반대해 가출을 박정희 대구 복무시절 동거를 먼저 시작했구나! 얼마나 좋아했으면…
하지만 비운의 퍼스트레이디 아내도 원든 원치않던 사고든간에 총에 맞고 본인도 총에 맞고 어쩌면 비운의 가정사를 만들었던 것은 한 가정으로 봐서는 안타깝기도 하다. 

 



4. 최규하의 아내, 홍기(1916-2004)
1916년 최규하 외자인 홍기 둘다 아버지들의 약속으로 혼인을 한 케이스로 둘다 한학자의 자녀들인 셈이다. 가장 잛은 8개월 10일의 잛은 대통령의 재임 어찌 보면 전두환이 마수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 쿠데타로 이미 모든 군과 권력기관을 잡고 있는 터라 아마도 군의 협박이 있었는지 그만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두환의 권력욕을 채우는 동안 그 시간동안 아마도 허수아비 대통령으로도 기록될 수 있지만 아마도 만약 그 기간에 진짜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돼었을 텐데 말이다. 기껏 국민들이 피흘리고 싸운 나라를 홀라당 전두환에게 넘겨주었으니 죽써서 개준 꼴이라고 밖에는...



 


5. 전두환의 아내, 이순자(1939-현재)

이사람 어찌보면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현실적인 정치개입을 시작한 시기로 판단된다. 이전에 영부인들이 했던 정치로의 개입이 없었다면 이순자씨 부터는 현실적인 정치개입과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시기로 예측된다. 아마도 천문학적인 세금포탈로 아직 까지도 문제가 쿠데타로 정권을 획득하고 그 열매를 모두 빨아먹은 시대로 추측된다. 몇천억의 자산들을 신군부들이 가지고 있고 못받은 세금이 2천억이 넘으니 도대체 이분들은 얼마나 헤쳐드신 것인가? 창피한 노릇이다. 광주에서 그 많은 피를 흘리게 하고 얻은 정권이니 얼마나 독하고 얼마나 사악한지는 구지 이야기 할 필요도 없다. 자업자득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잘 살고 모든 부와 권력의 영예를 아직도 차지하고 아직도 누린다는 것에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별명이 아마도 '주걱턱'이라고 하는 별명이 저안에 얼마나 많은 욕심과 허영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자자손손 해먹을 수 있는 양분을 ... ㅠㅠㅠ 아마도 대통령의 본격적인 비리가 그 외척의 비리가 하늘을 찔렀던 시기였을지 모른다. 남편은 김재규가 만들어놓은 그 기반을 그대로 쿠테타를 통해 홀랑 먹었고 아내는 그 권력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대통령 친인척 비리와 신군부와 비리가 대한민국을 발라 먹기 시작했던 시대로 이해될 듯 하다. 



6. 노태우의 아내, 김옥숙(1935-현재)
그림자 내조로 아마도 전임 이순자씨가 했던 여러가지 Overshooting으로 아마도 처음부터 초지일관 뒤에 있었고 신군부의 과거 행적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지속적인 사과를 했다. 아마도 친구야! 라는 말이 많이 유행했지! 그때는 친구따라 쿠데타를 하고 권력을 얻고 대통령까지 그대로 승계를 받은 케이스다. 그러나, 말년에 이래저래 건강으로 고생했지만 광주의 사과를 잊지않고 꾸준하게 했던 점, 뒷전에서 바라보며 정치 일선으로 크게 나오지 않았던 점은 그래도 일견 이해가 간다. 

 

7. 김영삼의 아내, 손명순(1929-현재)

 

김해군 진영면 마산여중, 마산여고를 나와 이화여대를 이상하게 영부인들은 모두 이화여대를 나와야 했구나!  전두환이후 하도 물려서 그런가 대개 내조로 돌아서게 만들었구나! 이순자씨의 역할이 컷네! 대개는 학교다닐때 이미 임신을 하고 학교를 다니고 참 들 대단하네! 대개 다 집안이 좋고 김영삼또한 집이 부자였고 삼김의 의기투합으로 대통령에 오르고 칼국수를 워낙 좋아했던 대통령 아침에 새벽운동 조깅을 좋아하고 아마도 자기관리에 특별했던 대통령이었고 그런 대통령을 보필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ㅠㅠ 어찌보면 IMF 구제기금을 받아 경제적 파탄을 맞고 상당히 능력이 있어 보이나 그 만큼 무능했던 대통령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있었고 그 열정을 뒷바침하는 것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에 대한 안목과 그 조치 부분이 너무 미흡했던 대통령이지 않았을까 한다.  





8. 김대중의 아내, 이희호(1922-2019)

처음으로 이화여대가 아닌 서울대학교 출신의 영부인었구만, 소위 의식있다 말할정도로 사회문제나 민주화에 스스로 엄청난 관심과 열정을 가진 분으로 아버지 어머니 모두 병원과 한의원 출신의 바탕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찌보면 민주화운동에 대한 뿌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그 이후로도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대한민국에 가장 대통령 다운 대통령을 가져본 때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판단한다. 






9. 노무현의 아내, 권양숙(1948-현재)

경상남도 창원 언론이 만들어낸 논두렁 시계, 아방궁이라는 피해를 당했는데 나중에 다 오보나 과장기사였는데 사과도 없었다. 살아서 언론의 똥파리떼 습격으로 하루도 편할날이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민국 언론은 한번도 정의를 진실을 추구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여간 대단한 대통령이 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더해가는 이유는 대한민국 대통령중 존경이라는 단어를 붙힐 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리라! 



 


10. 이명박의 아내, 김윤옥(1947-현재)

별로 할말 없다. 이명박씨는 하도 돈에 민감하신 분이므로 ... 부자돼세여! 






11. 문재인의 아내, 김정숙(1954-현재)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고 많은 피해를 봤던 또하나의 장본인으로 기억된다. 사치로 이야기 햇지만 까면 깔수록 언론의 플레임이란 것 우리나라 언론은 참 개똥이나 마찬가지로 나는 생각한다. 나는






12. 윤석열의 아내, 김건희(1972-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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