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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젊음

by 링마이벨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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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파르타가 육체에 몰두했을까? 신체의 미덕은 건강이다. 젊음은 힘과 속도를 동시에 부여받았기 때문에 근대경기들은 젊음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것에 집중했었던 것 같다.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중 가장 절실함은 건강함을 기본으로 하는 힘과 스피드에 탐닉하게끔 했다. 아마도 인류의 가장 탁월함은 생각하는 능력과 젊음이다. 한편으로 노화는 어떤 일에도 적합하지 않고 수고로움이나 번거로움을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왜 체력이 생존임은 아마도 마라톤 평원을 가로질러 스파르타에 페르시아의 침입을 알려온 그때처럼 아마도 생존에 필수적인 기능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시적인 공포나 두려움에서 시작한 생존을 위한 사투는 아마도 인류의 몸집을 넘어서는 동물들에 대해서 일단은 적개심으로 출발하였을 것이다. 인간이 권력을 위해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던 그 시절에 인류를 위한 최고의 기술이 바로 체력이었고 젊음이었을 듯 하다. 

젊은이들에 대한 숭배와 다름없는 것들이 횡횡하였고 전쟁에 가장 쓸모있는 resource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존망을 위한 contingency plan에 바로 싸울수 있는 젊은이는 아마도 그 어떤 가치 보다도 우선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왜 대한민국 사회에서 Generation Gap이라는 문화적 충돌현상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old & new 로 대두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지금 한국사회에서 엄마, 아버지는 사실 자본을 많이 소유해서 나(젊은이, 자녀)를 서포팅할 수 있냐 없냐가 일순위요! 그 일순위는 돈도 돼지만 권력도 그 어떤 영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냐? 없냐를 특징지어지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한번도 사회적 담론으로 아젠다로 협의돼어 보지 못하고 그저 낮은 정치적 협잡과 권력욕에 불타오르른 정치인이 그때 그때 가져온 임시방편의 사회적 담론으로 꽃도 못피워 보고 갈등만 내부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되어 온 것이다. 

정치의 노후화와 후짐으로 계층간의 갈등, 사회적 불합리가 조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정치적 이슈로 활용해 갈등만 만든것이 정치인이라면 기업가는 아버지에게서 승계받은 자식들의 나이가 재벌2세 3세의 나이들이 70년대에 이르다 보니 그 자식들이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 편한 그 중간의 회색지대를 모두 jump하다 보니 나이든 사람들은 퇴물아니 퇴물로 여겨지며 공교롭게도 사회적으로 직장내에 이러한 왕따 구세대들은 능력여하를 막론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보니 많은 사회적 불평등의 빅뱅이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다음 세대는 나이에 대개 관대할 것 같지만 오히려 세대가 갈 수록 그 갈등은 더욱커지고 넓어 지고 있는 추세로 여겨진다. 이강인의 사태는 사실 이강인이라는 축구선수는 그럴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확대 재해석되는 되는 것이다. 승부를 위해서라면 그 다음 감독도 다시 기용하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는 승리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지고 있고 동기는 없고 결과에 더 바짝 다가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치는 70~80까지 연명하고 지속하는데 다른 어떤 카테고리에도 이러한 현상은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의 선거에서 보아도 트럼프 & 바이든의 예를 봐도 바이든의 나이를 가지고 질질 물고가는 트럼프도 사실은 70세이고 중국의 시진핑을 보아도 엉뚱한 나이에 대해 적당한 해법없이 마녀사냥식의 정치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대한민국은 지금 담론이 문제가 아니고 생존을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는때라 이러한 담론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갈등구조가 더 복잡하고 촘촘히 문제가 돼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직장으로 돌아와 보면 재벌2~3세의 아들이 70년대생~80년대생인걸 어쩌겠냐? 그리고 기업이 오너에 맞게 회사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 논리적 완결성을 가지고 갈려고 이야기하는 논리치고는 사실 무리가 많아 보인다. 아무래도 이러한 글을 쓰는 걸 보니 나 또한 나이가 많이 들었나 보다. 허지만 누구나 나이가 든다. 예전에 내가 느꼈던 나이에 대한 느낌도 지금 내가 상대적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수천년전 동굴벽화에 있던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라는 의미와 뭐 다를 것이 있겠는가?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지나고 나이가 들고 서러워서 그러는 거겠지! maybe 

만약 이러한 사회적 리소스를 잘 활용하는 차원에서는 많은 재협의가 필요하다. 너무 빨리 사회에서 내몰아 집안으로 제한하기에는 요즘의 나이에 비해 체력이 넘 좋은 이유도 있다. 넘 잘 먹고 조심하고 관리가 잘돼 과거의 나이대에 비해서 훨씬 젊은 체력이기 때문이고 허지만 직장의 수는 더욱더 제한되고 심지어 기계가, ai가 대신하는 영역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 그 줄어든 자리에 young&old가 뒤섞여 자리 싸움 하는 것처럼 비춰질수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이상향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사회적 담론을 만들 그 필수적인 과정이 왜 생략되는 것일까? 서구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마 요즘 젊은이들도 그 자연스런 토론의 과정을 너무 정치가들의 자산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치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혐오와 갈라치기 그 정치적 폐단이 극에 달하고 있다. 종편의 허가가 커다란 한 획을 그은 것 같고 넘 좌우로 갈라놓고 싸움을 시키는 정치인과 방송국이 얄밉게 느껴진다. 해답은 애초에 목표에도 없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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