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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외할머니 외삼촌

by 링마이벨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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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의 어머니 우리 외할머니 

내가 어려서 우리집은 시골집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이유로 우리는 외삼촌이 옆에 살고 계셨고 외삼촌은 또한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어찌보면 삼대가 어머니, 외할머니, 외삼촌이 나란히 같이 살고 있었다. 외삼촌의 집은 민둥산 밑이라 갖가지 과일 자두, 포도, 복숭아, 살구나무가 있었고 커다란 밤나무도 같이 있었다. 외할머니 댁은 외삼촌과 외사촌 형이 2, 누나가 1 동갑네기 1명이 살고 있었고 우리집은 2남 4녀의 다복한 집이었다. 외삼촌은 동네의 험한일을 처리하는 해결사 였고 묵묵하던 성격으로 거의 술을 달고 계셨다. 자그마한 언덕을 넘어오실때 부르시던 지금도 알수 없는 유행가 가락을 부르시며 언덕을 넘어오실때는 외가댁과 우리집 모든 누나와 형들이 나가서 배웅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해가 넘어갈때 그 게슴츠레한 하늘아래로 내려오실때 웃음소리와 같이 들리던 그 정경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외삼촌이 어깨동무를 하고 유행가가락을 읖조리면 감탄을 하면서 그 언덕을 내려오곤 했었던 것이다. 어느덧 내가 그 외삼촌의 나이가 돼어가고 있다. 이제 생각해 보면 남편을 일찍 여읜 누나의 옆에서 그 많은 밭과 논농사를 삼촌이 대신 하시면서 건강이 많이 악화된 부분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동네에서는 외삼촌을 거의 어려운일을 도맡아하고 그 와중에 근처누나가 하는 농사도 대신하며 잡화가게와 여러가지를 겸업하다보니 참으로 힘들었것으로 생각된다. 

어렸을적 외할머니가 외사촌을 너무 아끼고 우리를 약간 거리를 두는 것 같아 많아 서운하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풍족치 않은 살림에 가진것이라곤 너무 적다보니 매번 분배라는 문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외할머니는 좀더 외사촌에게 할당을 해준것 같다. 마음이나 물건이나 그런데, 외삼촌은 외가댁 일보다 누나의 일을 우선적으로 돌보았던 것이다. 없어도 누나먼저 있어도 누나먼저 모든 삶의 우선순위는 누나가 먼저였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삶의 분배원칙을 이제야 깨달아 간다. 외할머니의 고충이 얼마나 심했을까? 일찍 남편을 잃고 힘들어하는 딸을 주변에 둔 어머니의 마음이라 외삼촌은 누나를 우선순위로 하고 아이들 다치지 않게 외가댁아이들을 조금더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숙모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외숙모와 어머니는 약간은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외숙모를 엄청 챙길려고 하신다. 명절때나 집에 무슨 일이 있을때 "외숙모 보고 와라!"하시면서 번거롭더라도 이 용돈 외숙모 갖다 드려라! 말씀하신다. 삶에 배려란 얼마나 진지하고 얼마나 서로를 생각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깊이의 차이는 얼마나 심한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몇치도 안돼는 심장의 무게와 깊이를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삶의 배려는 내 외할머니와 외삼촌을 통해서 배워왔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말할것도 없이 말이다. 우리가 위인과 성인의 깊이를 이야기 하고 추측하지만 나는 내눈으로 내 주변의 위인들이 한 일을 보았던 것이다. 그 배려를 그 마음의 씀씀이를 보아왔던 것이다. 맬 생활에서 내가 느꼈던 그 깊이는 아마도 어마어마한것 같다.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해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것 감동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생활속에서 내 주변에서 일어남을 내가 인식하지 못할뿐 내가 느끼지 못할뿐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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