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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스페인 내전

by 링마이벨 2023.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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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선전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최초의 전쟁.

외국특파원을 끌어들이는 자석처럼 언론담당 장교가 설명하는 적군의 만행은 선정적인 제목과 함께 널리 퍼져 나갔다. 결국 전쟁의 합리성과 논거, 즉 명분 찾기에 언론을 이용한 것이다.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확인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2023년 대한민국의 정치현실과 미디어 현실과 비슷하다. 뉴스는 많지만 국민이 너무나 다양한 뉴스들이 유투버를 포함해 넘쳐나고 있는데 사실 여부의 중요성 보다는 사실이 그러한 뉴스가 재생산 된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유불리가 있어서 그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그 시점에서부터 모든 불필요한 사실들이 생겨 난다는 것이다. 사망자수는 과장되기 일수고 작전의 성과 또한 그렇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가자지구의 하마스전에 똑같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전쟁의 단면인 것이다. 전면전은 지양하고 국지전으로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제한된 전쟁을 치른다는 것이다. 

성직자와 교회 공격은 스페인 교회의 막강한 정치적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외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외부세계가 스페인을 지극히 종교적인 국가로 바라보았던 고정관념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스페인은 교황의 권위를 마지막까지 종교전쟁을 벌이던 영국과 유럽의 형제 국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페인의 카톨릭교회는 보수세력의 성채였고 , 우파가 스페인문명으로 정의하는 어떤것의 토대였다. 

혁명이 일어나고 합법을 가장한 재만은 대도시 지방도시에서 자행되었다. 간이 재판을 하고 바로 즉결 처형을 했다. 플래카드와 함께 길거리에 전시되었다. 공포와 혼란을 틈타 수많은 범죄자들이 편의적 정치적 깃발을 내걸고 범죄 활동을 저질렀다. 대개 혁명이 일어나고 처형자들은 '홍위병'이라든가 '완장'이라든가 갑자기 권력을 손에 넣어 주체할 수 없는 흥분한 젊은이들이었던 것이다. 

마드리드에 있는 Casa de campo는 ' 파세오'로 인적이 드물었던 장소로 처형하기 좋은 인적이 드문 장소로 쓰였다. 혁명때 처형을 하고 시신을 처리하던 장소였던 것이다. 지금의 리조트와 공원으로 쓰이는 장소였던 것이다. 혁명에는 다른 살인과 약탈 방화에 대한 이유가 없었다. 론다에서는 절벽에서 밀어서 죽이는 살인도 자행되었고 여자아이들 임산부 어린아이 가리지 않고 죽이고 사살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혁명은 전쟁보다도 더 잔혹하고 이념도 없고 정당성도 없이 사살되었다. 혁명시에 죄수들의 처형을 모두 금지시켰다. 내전기간동안 공화정부 지역에서 테러로 희생된 사람은 3만8천명에 이르렀고 그 중 8천8백명이 마드리드와 카탈류냐 8천명에 달하니 유독 마드리드와 카탈류냐의 사람들이 많이 희생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1936년 여름과 그 해 겨울이 많이 살해된 것이다.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처형될때 처음에는 공포와 불안으로 떨다가 이념과 인간의 소신이라는 자기확신에 찬 이들이 그러다 조만간 지식인, 힉자, 모든 사람들이 망라해 길거리에서 행해지던 쳐형을 구경하기 위해 나오면서 그 옆에 추로서와 커피집이 성행했다고 한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성폭력에 당하게 하기도 했고 모든 반인륜 범죄들이 혁명과 내란에 성행하게 된다. 혁명은 성공한 것이고 내란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그또한 자기들이 붙힌 이름일 것이다. 

 

쿠데타는 긍정적 신념이 필요하지 않으며, 다만 군대가 필요할 뿐이다. 그에 반해 내전은 명분, 기치, 일종의 공약을 내세운다. 상황이 절박하다 보니 음모를 했던 자들은 많은 고민을 하지 못하고 정부형태를 꾸미게 된다. 그들은 국가를 수중에 넣은 후에야 더 정교한 사항을 논의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공론화를 시작한다. 정권획득이 먼저고 국가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도 보면 인수위원회가 발동돼지만 거기서 모든 것을 의논하기 보다는 자리를 누굴 앉힐지에 대한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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