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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broken

뉴스도 등급이

by 링마이벨 202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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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는 등급이 있다. 우리사람사는 세상에서 등급이 정해져 있다. 왜 뉴스는 기분나쁜 일만 지속해서 나오는데 사람들은 그 나쁜컨텐츠를 시청을 할까?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왜 구지 좋은 일 안 알려주고 세상의 진실을 알려준다는 미제아래 진실이라며 떠들며 매일매일의 독을 뿜어나오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나쁜 일이 중복과 누적이 돼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세상의 악한 기준에 대해서 인간의 최소한의 기준선을 자꾸 무너뜨려 아래로 추락하게 만드는 것일까? 유난히 뉴스를 많이 소비하는 민족 공중파, 종편, 뉴스전문채널, 유투브까지 신문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웃을 행복하게 하기위해서도 아니고 오히려 이웃과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데 의무가 있다고 하며 진실의 원칙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뉴스는 진실을 원하지도 않는것 같다. 오히려 마녀사냥에 앞서고 불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그러면 누굴 위한 것일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결국 언론사주의 이익을 위해 더 크게는 그 자식들을 위해서 자기랑 친한 정치인은 그냥 SIDEMENU고 결국은 스스로를 위한것이라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이 매일매일의 의식을 위해서 재료는 세상에 널려 있다. 특히 공평하지 않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면 뉴스는 구지 집밖으로 나올 이유도 없다. 왜냐 그 사회 부정부패의 구성원이 결국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기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메신저가 필요하고 제보만으로 방송국을 운영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밖은 그야말로 진흙과 뻘의 쟁탈전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서로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기 때문에 그러한 싸움을 가지고 언론이 자기잇속에 맞게 자기편의에 맞게 편을 들어 싸움을 시키기 때문이다. 

뉴스차례를 보면 내이웃의 소식이 먼저가 아니다. 정치가 정치뉴스가 일색이고 그후 살인, 강간, 성추행, 참 가끔 이보다는 앞서는거 정치와 아파트이다. 최근에는 주식이 결국 정치와 부자돼는 길이라며 그 이후에 여러가지 범죄가 나온다. 심지어 국민은  대다수가 진실이라고 믿지만 그 진실이란 말은 중요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진실이 빠르고 진실하면 뉴스가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누구의 몫인지 모르겠다. 진실이란 말을 이야기하는 방송사도 이제는 별로 없다. 그냥 떠벌이들이기 때문이다. 누가 아파하건 누가 힘들어하건 그때는 진실로 이야기 했다가 아니면 주말아침에 미안하다고 한줄넣으면 상관없기 때문이다. 서점의 진열대 보면 이제는 주식으로 모든 진열대를 깔아놓았다. 돈돈돈 이것을 누가 만들었는가? 국민이 

정부는 쉬쉬하고 정권말기에 구지 땅값과 아파트값을 내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난국을 장관 바꾸어 놓고 공급이라며 이 구간을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모양새다. 뉴스는 오늘도 독을 뺕는다. 가래침뺃듯이 배려와 진실은 없고 오로시 술집에서 이미 술이 아닌 술 주정뱅이의 모양새다. 나는 그 독을 좋아하며 한쪽에서 한쪽으로 묘하게 매일매일의 방향을 강요한다. 봐라 얼마나 뉴스가 무책임한지 오늘 서초에는 집회추산 100명 추산 광화문에는 100명 추산 가서 사진 찍어서 비교해 보면 끝나는 것을 그러고는 마치 언론이 형평성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왜 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유투브에서 뉴스를 검색할까? 나만에 뉴스로 CUSTOMIZING돼있는 뉴스를 객관적이지도 않는데 왜 난 맬 뉴스를 볼까? 나를 위해서 나의 그 알량함을 위해서 보는것은 아닐까 한다. 뉴스는 오로시 뉴스를 위해서 존재했을 뿐이다. 나를 위해서 나의 알량함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뉴스를 본다. 내가 원하는 뉴스 내가 보고싶어하는 뉴스이기때문에 어디에서 본들 의미가 없다. 유투브에서 나는 관심도 없는 검찰뉴스와 이재명뉴스와 관심도 없는 한동훈이라는 이름을 수십번 들으며 왜 핸드폰 열기위해 열지도 않으면서 열일하는지 돈많은 주호영이야기와 인물값도 못하는 수많은 정치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조국의 이야기 정경심 원자력 이야기 법무부이야기 이러한 뉴스를 들으며 내 인생에서 괜한 분노와 화가 나서 뉴스를 소비한다. 내 화는 언론사의 수입이 돼고 언론사의 존재이유가 돼고 아무 진실도 없고 맥락도 없는데 그 맥락 없는 ㅇ이야기를 하는 기자와 그 기자가 구속돼었다 아무일 없이 풀려나고 검찰관련 모든 사람들이 다 무죄로 풀려나고 다 강간이어도 풀려나고 성추행해도 풀려나고 약물해도 풀려나고 남에게 약을 먹였는데도 풀려나고 길거리에서 빵을 훔친사람은 구속되고 내인생은 이렇게 꼬여가는데 언론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다 풀려난다. 실제 연예인보다 더욱더 연예인 스러운 사람들 매일 국민들은 그 막장을 들여다 본다. 언론사는 국민을 나누어 싸움을 만들고 어느 선행도 선행으로 만들어 보지 못하니 어른도 따라갈 이정표가 없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선인이 선행이 없다. 다 나쁘다. 그래야지 자기가 나아 보이니까? 그래야 자기 범죄도 묻혀지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뉴스를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교회에 가는 이유로 가끔식 내가 생각해보는것 범죄를 악행을 저지르고 교회에 나가 신앙고백하고 간증하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러한 행동은 국민을 사회전체의 눈높이를 낮추어 평균의 삶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뉴스가 일조를 하는 것 같다. 아마도 나도 나의 평균치를 떨어뜨리려 오늘 그 뉴스를 중독처럼 씹으며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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