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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y 링마이벨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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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라는 말이 있었다. 우리가 마음 먹은 것을 하지 못할 때 가끔 우리는 그 이유를 나이로 이야기 하곤한다. 나이는 실제로 못하게 하는 원인은 되지만 사실 직접적인 원인은 돼지 못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다름아닌 내가 이미 못하는 것을 전제로 하다 보니 거기 나이 이야기가 결부되는 것 같다. 귤처럼 속살이 겉과속이 동일한 애도 없다. 겉과속을 똑같은 색을 띄는 것 겉과속이 일치한다는 것 만큼 인생이 재미없는 일을 없을 듯 하다. 귤은 한입에 물 수 있지만 탱자는 씨가 너무 커서 바로 씹었다가는 치아가 많이 손상될 듯 보인다. 하지만 어찌 보면 비슷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다 똑같다."라는 말을 쓸때 우리는 나의 결점을 이야기 할때 적당한 표현이다. 사실 백지장 차이를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백지장의 깊이와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백지장은 아마도 다른 차이가 크게 없을 듯 하다. 근본 차이는 그것을 이야기 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차이가 다른 것이다. "사람의 능력이 다 거기서 거기다."라는 말은 거꾸로 거기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동일시하는 현상이라고 본다. 

사실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분명히 이 차이는 다를 수 있고 다른 것이다. 회수는 바로 문화로 표현될 수 있다. 문화 또는 문화권 동질성을 지닌 집단 대중의 인식 그 측면이 회수인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귤과 탱자는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씨를 크게 가지고 있는 탱자와 귤은 분명히 다른 내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놈처럼 표리 부동하 놈이 있을까? 겉은 빨갛고 속은 하얀 속살을 가진 놈이다. 안에 씨도 가지고 있고 속살도 단단하다. 얘는 누구에게 하도 많이 맞어 생채기가 난 것일까? 우린 이상하게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좋게 보이지 않는 문화권에 살고 있다. 사실 겉과속은 이중성보다는 더 자연스러운 부분인데 '다르다' 이 명제를 인정하는 부분 이 문화의 속성을 잘 받아 들이지 못하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은 그래서 너무도 중요한 문제다. 귤이 회수슬 건너 탱자가 돼었을때 땡자를 너는 귤과 다른 놈이라고 받아 줄 수 있는 문화 그 문화적 포용성이 지금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의 원동력처럼 느껴진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토양이 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다를 수 있고 달라야 삶이다. 내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삶은 가끔 나를 견딜 수 있는 힘이 그 지구력이 내안에 있어야 한다. 온전히 나를 인식하고 나를 참아주고 나를 안아줄 수 있는 그 힘이 우리가 문득 숲속에서 거대한 숲이지만 나를 구성하는 많은 모습이 나의 숲이 되고 나의 오늘이 된다. 나의 오늘은 비바람을 견디는 소나무가 되기도 하고 화려한 은사시나무로 햇빛을 받고 내일은 칡덩굴처럼 산그늘에서 오늘을 견뎌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오늘을 견딜 수 힘이 나인것이다. 결국 나의 숲은 나의 나무이고 나의 오늘인 것이다. 잎이 무성할 때도 있고 냉혹한 겨울을 잎도 없이 겨울을 견디어 내고 봄에 꽃을 피워 보는 것이다. 그게 나의 의무이고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나무로 비춰 보일까? 보다는 나는 어떤 나무이고 싶은 것이다. 가끔 표리 부동해 보여도 나이고 나의 겉이 너무 초라해 보여도 가끔 내가 아니길 바라기도 하지만 온전히 모두 나이기 때문에 나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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