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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게이샤의 추억

by 링마이벨 2023.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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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영화를 한편 보았다. 
썩 재밌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 자페의 의미는 충분히 있는듯 하다. 게이샤 아 이영화는 미국인 감독 외국인이 가지는 향수를 그 이방인의 눈으로 본 향수와 공감을 충분히 보여준다. Last samurai나 마지막 황제나 티벳에서  ~ 외국문명이 주는 그 매력이 사실은 어마어마한 편견과 더불어 느끼는 nostalgia같은 영화 
카메라를 쫒아가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그가 느끼는 동경이 배고픈 아침에 빵냄새같은 아니 커피냄새 같은 1차원적이고 감각적인 것인지, 삶에서 묻어나는 아니 어쩌면 세발낙지처럼 입천정에 붙어서 온몸에 쫙 퍼지는 것 같은 것은...

그냥 신발에 달라 붙은 껌같이 하루 종일 나쁜 느낌으로 있는지,  이영화를 보고 게이샤에 대한 향수가 곳곳에서 드러나 보인다.

'kindness'한 조각으로 평생 한 삶의 방향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섬아을 여자 아이의 이야기다. 삶 자체가 피로하고 지친 삶이 한조각의 kindness로 얼마나 많은 길을 나아갈 수 있었는지,  삶이란 희망이란 미래란 어떤 한 조각도 위로 받지 못할때, 그 빙수의 단맛같은 희망을 찾아간다. 

한편으로는 사랑보다도 더 진한 우정을 이야기 하는데 미국인들의 우정이 아닌 것은 동양인들의 우정 남자의 우정은 여자의 그것보다 더 크고 심지어 사랑이라는 감정도 그 깊이도 남자의 우정을 따라갈 수 없다는 동양의 우정, 특히 한중일의 우정같은 느낌을 이야기 한다. 

감독은 그 우정의 비유, 그 크기를 자기를 죽음에서 자기를 구해준 보은으로 친구에 대한  감정을 평생 덮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왜 갑자기 그 우정을 깨고 한 여인에게 돌아왔다는 설정도 참으로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그 삶의 크기를 우정이라는 것에 평생눌려서 그 감정을 숨기고 살아온 남자가 다시금 한 여자에게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그런 우정을 중요하게 여긴 사람이 평생 빙수 한 그릇 얻어 먹고나서 평생 자기 주변에 있었다는 그 설정이 참 재밌다. 언니를 찾는 것 만큼이나 언니를 잃어버리는 것도 빠르고 중간 과정들이 생략돼기 일쑤다. 대본이 그렇게 깊이가 있고 스토리가 치밀하지도 않다. 아마도 여자 작가가 글을 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게이샤는 흡사 마지막 왕 같다. 양심을 지켜오고 한번도 stereo-type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처럼 들린다. 게이샤는 낭만 사무라이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이유도 없이 샤넬 NO5를 뿌리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에게는 그녀가 꼭 있어야 하고 그래서 항상 옆에 있다. 일본의 문화를 보여주고 일본에 대한 대표적인 향수 쓰모, 일본의 전통집들. 게이샤의 화려한 치장이  과대 포장돼어 있어 보이지만 곳곳에 또한 그러한 비유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서사를 읽어줄때도 그렇고 끈 하나 풀면 스르르 다 풀어질 것 같다. 그래서 더 감각적이고 자극적이다. 기모노의 매력에 한참 매달려 왔고 게이샤의 독백을 영화롤 옮겨 놓은 것 같다. 가난으로 이끌어진 삶의 조각방향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힘들게 익숙하게 살아온 날들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의 기생을 이러한 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황진이가 되겠지! CAMERA의 힘이 대단하네! 깊이가 있건 말건 일본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미국사람이 이런 감정을 표현해 낸다는 것은 실로 대단해 보인다. 핸드폰으로 버스로 타고 가면서 보았던 영화치고는 2시간 25분을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나를 2시간 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보냈다. 영화의 끝은 너무나도 평이해서 확실히 미국 사람들은 끝의 여운이나 영향력 부분에서 확실히 느릿하다. 해피엔딩

 

미국인의 감독이 그린 영화에 대해 아마도 대본은 동양인 여자가 쓰였을 것이다. 게이샤의 추억은 미국인 감독에 중국인 배우들 어찌보면 일본과 반일감정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모두 출연한다. 아마도 영화의 느낌이 좋아서인지 몰라도, 아니면 일본자금이 들어왔나?  아니면 이 연기를 할 수 있는 동양인 최고의 배우들이 중국인들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당대 최고의 배우들, 중국이나 홍콩 배우들, 가장 중국적인 "붉은 옥수수"나 전통적인 중국 영화를 많이 연기를 했던 중국의 배우들을 주연으로 삼은 것은 우연일까? 너무 재밌다. 그 주변 상황들이 그래서 아마도 그 영화를 몰입을 못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게이샤는 참으로 엄청난 직업이었다. 게이샤는 승려다. 사랑하지 말고 balance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다. 대한민국 일본이 보도방의 문화가 저때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라시 마차를 타고 여흥이 있는 장소를 출타를 하는 장면이 참 지금의 직업의 모티브가 된 것 같다. 
수천년의 남녀의 역사를 통해서, 또는 애정이나 소설또는 현실에서 남녀의 관계가 상하지 않고 가장 오래갈 수 있었던 방법을 게이샤는 알고 있었는 듯 하다. 누군가의 남자가 아닌 모두의 여자로 남을려면 어떤 치우침도 없는 관계설정이 필요했던 것 같다. 후견인이라는 것 지금은 sponsor로 쓰여지는데, 이러한 후견을 받고 평생 결혼하지 않고 연애만 하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직업에 최적화를 어떡해야 하는지 그것은 오히려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business 마인드로 살아야 오래살아간다는 비법을 알아버린 것이다. 한때 일본이 경제적 동물이라고 많이들 이야기 했는데 이런 sponsor를 가질려면 뒷배경과 현금이 충분히 있어야 했고 이러한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경제적 동물이라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결국 무사계급이라는 것이 존재 했기 때문에 거기에 기생했고 죽지 않으려면 기계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직업적 생존의식이 발동했으리라 난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러한 게이샤의 장수 비결을 거꾸로 상황설정을 카메라로 물구나무서서 찍은 영화 같다. 한남자를 남자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 여자의 바램을 운명으로 상황설정을 한 것 같다. 여기서 남자의 소유는 거꾸로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 본능이 한 여자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여자를 만드는 것이다. 부러워 하나 누구도 소유하지 못한 한 여자의 삶이 끝에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그래도 희극적 요소로 바뀌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지만 현실의 삶은 어쩌면 누구보다도 가장 불쌍한 여자의 삶처럼 느껴진다. 나는... 

항상 웃어라! 야 이 삶이 얼마나 피곤할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smile, smile

미군들 앞에서 1950년대 이후에 대한민국 곳곳에 늘어난 양색시집, 술집, 그래서 태어난 이태원, 용산, 동두천, 춘천, 평택 

우리의 이 동네는 얼마나 철저히 파괴되어서 이제는 그나마 생명력을 가지고 중심을 지켜온 것이다.

그녀의 직업적 웃음, 항상 웃어야 한다는 소신은 그런데 가끔 우리도 그럴때가 있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 본능적으로 친절을 만들었던 그것이 권력이고 돈이고 외세의 무자비한 폭력앞에서 내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그 할머니의 엄마, 아빠

우리의 Kindness는 다시 회귀한다. 웃음이 지독히 약자편의 자산이었을 것이고 웃음은 죽음의 공포와 가난의 공포앞에서 우리를 피해 나가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항상웃어라 그 이야기한 이를 찾아서 평생 searching 사람의 이야기가 이 영화처럼 보인다. kindness 왜 친절해야 하는지를 빙수를 위해서~~ 아니면 

 

게이샤는 화려한 삶의 단편을 가지고 집보다 비싼 기모노는 참으로 많은 것을 기모노는 우리의 욕망이다. 그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려준다. 대상이 변화하고 세상이 변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은 감정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인간의 감정이 수천년을 지난다고 기계가 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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