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귀향을 보내서 울타리 넘지 못하도록 영역을 제한하는 하나의 도덕적 제한을 두었을까? 지금의 가택연금과 같은 것일수도… 영향력을 제한하고 관계를 재한했던 조상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정선, 제주, 삼척, 영월, 어찌보면 산좋고 물 좋은 관광지들이다. 지금의 안식년일 수도 있는데 도저히 뉘우침이 없거나 대역죄일 경우는 “ Long distance 사약”을 택배로 귀향지에 내려 명줄을 끊기도 하고 참수를 내리기도 한다. 과연 귀향간 그 시골동네에 집을 나갈 수 없도록 햇을까? 이 도덕적이거나 한편으로는 어떤 영향력들을 철저히 배제 하려고 했던 의도였을 것이다. ‘근묵자흑’ 강진이나 전라도 지역이 아무래도 기골장대하고 바른 역사의 줄기에 가까이 갔던 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무랴도 이런 영향력 이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