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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위리안치

by 링마이벨 2023.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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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귀향을 보내서 울타리 넘지 못하도록 영역을 제한하는 하나의 도덕적 제한을 두었을까? 지금의 가택연금과 같은 것일수도… 영향력을 제한하고 관계를 재한했던 조상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정선, 제주, 삼척, 영월, 어찌보면 산좋고 물 좋은 관광지들이다. 지금의 안식년일 수도 있는데 도저히 뉘우침이 없거나 대역죄일 경우는 “ Long distance 사약”을 택배로 귀향지에 내려 명줄을 끊기도 하고 참수를 내리기도 한다.
과연 귀향간 그 시골동네에 집을 나갈 수 없도록 햇을까? 이 도덕적이거나 한편으로는 어떤 영향력들을 철저히 배제 하려고 했던 의도였을 것이다. ‘근묵자흑’ 강진이나 전라도 지역이 아무래도 기골장대하고 바른 역사의 줄기에 가까이 갔던 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무랴도 이런 영향력 이었을 것이다. 그 옛날 아무리 고립시키고 제한해도 사람의 영향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쩔수 없는 듯 하다. 누군가를 구속하여 어떤 영향력들을 배제한다는 것은 독재자가 범할 수 밖에 없는 루틴이다.  
그럼 왜 척박하긴 하지만 산좋고 물좋은 곳으로 보냈을까?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거꾸로 경치 풍광 좋은데 가 ‘개심’ 하고 와라라는 목적으로 향토로 보냈을 것이다. 마음 고쳐먹고 나한테 잘해! 그런데 이놈의 유전자는 담을 뛰어넘고 더구나 정치적인 플레임에 희생 돼었거나 정치적 해석을 주로 했던 ‘성리학‘이라 따로 떼어 해석이 불가능하다보니 얼마나 억을한 사람이 많았을까 싶다.
‘위리안치’라는 것도 그러한 정치적 해석을 주로했던 사람들이 만들었던 방식과 유형이라 그러한 도덕적 뇌구조를 지녔던 사람들의 판단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삶의 중심 그 우주를 집으로 제한한 ‘재택근무’ 지금의 디지털 인프라기 있었다면 코로나 재택이었을 듯하다. 오히려 현대인의 위리안치가 더 고통이고 힘든 경우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디지털만 차단해도 군중속에서도 고독사가 가능힐 수 있다. 상대적인 해석이 제 스스로 곤란함과 단절을 과대증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의식을 통제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위험스럽고 무서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어찌보면 자유로운 영혼을 어떻게 구속 가능케 함이 자율이라는 플레임을 씌워 아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힌 것이다.
가장 위험스러운 위험한 사상을 위협요인만을 저격한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social' 기능을 없애고 'community'에서 배제한다면 요즘의 개념으로 보면 상당히 '곡기'를 끊는 것 만큼이나 영향력은 파워풀해질 수 있다. mobile 기기를 빼앗고 집안의 케이블 cord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요즘 상상을 하면 그리 작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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