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ive punishment 집단적인 처벌이라는 용어로 나오는데 행위에 책임이 없는 개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집단 처벌은 개인책임의 기본원리에 어긋난다. 이러한 집단 처벌은 국제적, 비국제적 무력충돌 모두에서 금지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연좌제라는 이름으로 連坐制 여기서 '坐' 라는 형벌기구를 칭하는 말로 우리가 고문을 하거나 책임을 추궁할때 앉히는 '의자'를 뜻하는 말로 아마도 "죄를 연계시킨다."라는 의미로 쓰이지 않았나 싶다. 갈등의 골이 깊으면 깊을 수록 이러한 연좌제는 더욱더 활개를 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같은문화와 같은 말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민족이면서 이념이 달라 남북이 갈라진 대한민국의 연좌제는 아마도 그 진폭은 가장 클 수 밖에 없다. 일제강정기를 거치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각자의 정치적 욕구를 바탕으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남북의 별도의 신탁통치를 해서 어는 날 남북으로 왕래도 불가능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분할이 된 뒤 그 이후로 한번도 합쳐지지 않는 세계유일의 분단된 땅 대한민국은 아마도 세계의 인식에서 보면 가장 위험하고 살벌한 나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아마도 문화의 가장 이질적이고 갈등이 표출된 형태로 지구상에 국가적으로 볼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또한 극심한 '좌우대립'이 존재하는 국가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빈부의 격차와 사상의 대립이 실제적으로는 좌우대립으로 표현되고 정치적인 이해득실로 첨예화된 논쟁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마도 대한민국도 그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일제강정기를 거쳐 전쟁을 거치면서 해결돼지 않은 사상적 대립이 서슬퍼렇게 존재했고 그 무수한 주검이 존재했던 대한민국은 아마도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좌우대립'의 어찌 보면 '생과사'의 갈림길을 피비린내나면서 걸어왔던 것이다. 이 피해를 온전히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부모님과 우리들이 경험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원조 왕따' '마녀 사냥' '인격학살' '인간의 기본권 박탈'하는 형태로 형제, 자매, 친구를 가리지 않고 전염병처럼 퍼져 갔고 여기에 분단국가라는 미명하에 더욱더 조직적으로 또는 거침없이 피해대상을 확대시키지 않았나 싶다.
단일민족이면서 어찌 보면 세계 그 어느 단일 민족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열과 갈등의 피해자가 바로 우리가 아닌가 싶다. 사회적인 병리현상 중에 가장 열악한 사례인듯 싶다.
유독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고 세계 유럽과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그것이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가리지 않고 그 전염병은 활개를 치고 있어 보인다. 가장 역사의 질곡이 일어나는 곳에서 가장 불평등하고 대학살이 일어나는 곳에서 갈등과 오해가 극단적으로 비춰지는 그 길목에서 그 장소에서 생겨나지 않나 싶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보면 '삼족' '구족' '십족'을 멸하고 부관참시를 하는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화가 당쟁이 서슬퍼런 그 시기에 사실은 정치적인 이해와 그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치열함이 빚어낸 결과로 보인다. 그 치열함의 상처치고는 들여다 보면 정치적인 욕심과 그 바램들이 빚어낸 곪은 상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1960년대 이후 우리의 분노와 상처는 그대로 그의 아들과 딸들에게 전해지고 그녀의 아들 딸이 그대로 답습해 실로 100년의 유산이 돼어 버린 것이다. 연좌는 생각해 보면 지배계급의 언어였다. 그들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의 안위를 위해 사용돼어졌던 전용 특수 언어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배계급의 영속성을 위해 감시하게 했고 그 감시로 국민들의 입을 막아 자유를 구속하고 억압하여 민도는 떨어 뜨리고 국민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것이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로 때로는 순한 양으로 때로는 어떤 불의에도 떨쳐 일어나지 못하는 소시민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인간의 굴레와 멍에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결코 보이지 않는 결코 보이지 않도록 유리천정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유리벽 아님 광장에서 공개처형을 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