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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곡동

링마이벨 2021. 3. 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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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가운데 서있다. 청년과 노인의 중간에 서있다. 아재로 아님 남자아재로 끄트막에 서있다. 내가 아닌 나이로 직장으로 집으로 나를 대신한다. 허수아비로 나보다 더 나스런 것들로 때때로 보다 더 자주 나를 속이는 것들에 익숙해간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집조다 더한 그리움과 옅은 가족으로 돌아가려 한다.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스런 아이들과 나 스스로 찾아가는 중이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존재가 허상같고 허허로움이 오히려 더 욕심으로 보이기도 그저 그렇게 웃음짓곤 한다. 무얼 저렇게 학교에서 학원에서 우리의 삶이 진정 저속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대피동의 학원 선생이고 싶다. 그는 성불인가? 모두의 우상처럼 그는 그럼 동굴, 이시댜가 나은 잘못된 그림자 양습소다. 삶을 정형화시키는 가장 문제중의 하나로 난 학교를 뽑고싶다. 이미지트레이닝 거짓도 진정한 삶도 그에겐 후순위다. 우리가 삶을 담보받아 온 정신을 쏟을때 그는 우리의 등뒤서 조금씩 빠져 나간다. 설탕물처럼 설탕에서 물로 또는 그 흙으로 나무는 흙에서 나온 것인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시작이 어려우면 끝이라 생각하면 돼는 것인가? 진실이 아니라면 진실의 끝이라 이야기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그 이익의 끝도 아니고 잉여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있다. 중곡동 우린 그 골짜기 안에 있다. 그래서 골 때린다 이야기 하는 건가? 현상을 바로 볼려면 신을 신고 그 길로 가야하지! 왼짝이든 오른짝이든지간에 나는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지 분간하지 않고 그저 어느 누구를 삻어하는 영역으로 남겨두지 않고 그저 긍정한다. 싫어하는 것이 없다보니 좋아하는 것도 없어 보인다. 아니 없을 것이다. 좋아하면 필연 싫어하는 것이 존재해애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싫어하는 것이 명확한 사람이 좋아할 가능성이 더욱 깊이가 있어 보이는 건 뇌피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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