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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logical

접속 영화

by 링마이벨 2021.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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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관 이었지! 아마도 여름이었을꺼야! 그해 우리는 너무도 행복했고 너무도 많은 생각을 많이 했던 해였지! 참 독특한 영화였었지!이 영화는 러브스토리를 아마도 analog에서 Digital로 방향을 이끈 중요한 영화라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생각을 못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된것 같다. 실제 미제 영화인 러브스토리에 모두가 빠져 있을때 구지 OFFLINE의 만남이 아니고 라스트콘서트처럼 음악이 흐르면서 한 여인이 죽음을 맞는 그런 애틋함이 그런 애절함이 있었던 전통적인 영화였다. 애절함이 구지 생과사의 문제가 아니여도 우연이라는 그 거대함앞에 인간이 얼마나 애절해 줄 수 있는지를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다. 50%의 익명성이 가져다 주는 우리가 매일 저녁때마다 TEXT로 만나지만 아직은 Visual이 제공돼지 않았던 그래서 길거리에서 지나쳐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때. 1997년 지금은 전화하나로 모든것이 해결돼었지만 그때는 아마도 PC를 통해 실제로 전화가 이어지는 그러한 오디오를 들으며 text로 모든것을 이야기하는 메인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PC를 통해서 우리는 또한 인터넷 서비스 프로바이더인 천리안 하이텔 ISP를 통해서 교환원처럼 서신을 주고 받았던 것이다. 화상은 아닌 TEXT로 ONLY TEXT로 우리들의 모든 소통을 이것을 통해서 접속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TEXT TO TEXT로 왜냐하면 아나로그의 정서를 한껏 살릴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이 TEXT를 읽는 형태로 여러가지 애달픈 사연들이 영화를 통해 소개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모바일 정서로 본다면 그 당시는 회귀할 수 없는 불편함 그 자체이겠지만 그 당시에서는 상당히 진보된 수단이었다. 접속이란 용어도 그러한 ISP에 접촉하던 그 당시 단어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의 접속이라는 영화의 느낌이 매우 구태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접속을 할려면 많은 것들이 있어야 했다. 속도 컴퓨터 연결 수단 지금은 항시 on 돼있다. 그러나, 항상 편의를 통해서 많은것을 얻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이 괴물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anytime, anycall, anywhere 이 any는 괴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디테일을 줄이고 우리를 무디게 하고 가끔은 바로 over-time, over-work, over~~ 과잉으로 넘어간다. 결국은 결과가 더 중시돼었지만 아직도 그때는 삶의 사랑이 목적이 돼었던 때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러겠지만 수단이 목적을 압도해버린다. 더욱더 누군가에게 더 보여주어야 하기에 사실은 깊이가 없어진다. 그 깊이는 기계로 대치되고 시간은 언제나 빨리 빨리 우리를 그 속도에 밀어 넣는다. 속도는 감정과 머뭇거림 깊이를 모두 삼켜버린다. 기계가 처음 자동으로 돌아갔던 answering phone의 그 애틋함저도 없고 전지전능함을 요구했고 그 요구는 모든 감정을 삼켜버렸다. 그리고 모든것을 0으로 빨아드렸다.
접속은 아직은 24시간 불켜진 여친의 방을 들여다보는 거울방은 아니었다. 옜 형님중에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밖은 눈이 내리고 있다가 눈이 잠깐 멈추고 있는 상황에 니 얼굴 보러 왔다가 없어서 돌아간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 여유 그 욕심없는 무던함이 몹시 그리워진다. 매일 매군간 항상이라는 그 욕심은 나만 봐주기를 바라고 나만을 나에게로 라는 욕심을 가져오게 돼었다. 집착은 기계문명을 발달 시켰고 가끔은 무지의 동경에서 오는 그런 간절함과 그리움은 없다.
나는 항상 Love is free.이 거친 paradox를 좋아한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이 욕심없는 명제 그렇지만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농담이지만 나를 온전히 혼자인 상태에 내버려 둘 수 있을때 진정한 자유로움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럴려면 세월의 경험등이 익숙해지는 그때인데 사실은 그때는 정열이 촛불처럼 다 타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마도 그때를 기다릴 수 없을것이다. 결국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면서 그러한 것들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을 사는것도 다 이해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우리의 오늘은 유예도 또는 선불형태로 쓸수없기 때문에 결국은 삶이 유한하기에 오늘을 접속해서 충실하게 오늘을 사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참으로 우리의 삶은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 축복을 즐겨야하고 또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넘 미래에 많은 생각으로 오늘을 소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ㅠㅠ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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