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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울음

by 링마이벨 202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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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만큼 사랑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있을까? 왜 우리는 눈물에 유난히 약하고 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일상에서 눈물을 많이 보여주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남성성과 유약함으로 비추었던 이 행위는 터부시 돼어 왔었다.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맬 반복되는 약육 강식의 일방적인 생존논리에서는 더더욱 말도 안되는 나를 보여주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왜 요즘은 유난히 눈물을 흘리는 횟수도 많고 많이 비추어 질까? 생각했더니 뉴스에 정치인, 연말 시상식, 월드컵 중계, 양심선언등 많은 눈물들을 쏟아내고 있다. 눈물은 아마도 감동을 전제로 하고 뭉클하고 감정이 복 받힐때 눈물샘이 터지는 것이다. 

유난히 횟수가 많고 camera에 비추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이 살면서 많이 공감되어지지 않고 많이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기계의 발달은 특히 모바일이라는 우리의 기술은 많은 것들을 개인화의 영역으로 옮겨놓았다. 은밀하고 사소한 영역으로 우리의 social이 가상의 세계속에서 이루어지고 스스로의 이야기들을 풀다보니 일상에서 아니면 이런말도 아재로 들릴지 모르지만 직접만남 보다는 가상의 공간이 더 편해진 것이다. 혼자서 웃고 혼자서 울고 모든 가상의 공간이 그의 공감 즉 공간의 느낌으로 발전된 것이다. 눈물이라는 문지방이 얕아진 것이다.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려도 그것이 이상하고 유약해 보이지 않는 시대로 들어간 것이다. 난 그 이유를 social이라는 디지털 디바이스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디지털 디바이스는 모든 공간의 가상의 공간으로 치환하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교감도 자연스럽게 표현하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람들이 감정의 문턱이 낮아져 눈물을 흘리는 트리거가 그 수위가 많이 낮아진 것이다. 그 가상의 공간에 잦은 표현은 그러한 눈물이 가지는 '나약함'과 남성성으 상실이라는 커다란 원죄의식을 버리게 된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일들이 빈번하고 너도 나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남자 새끼가 눈물은..."이라는 마초적인 일상의 대화도 이제는 꼰대가 되어 무대뒤로 넘어간지 오래고 눈물은 어쨌거나 '진실'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대통령의 눈물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 영역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눈물의 화학적 프로세스는 차치하더라도 눈물은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그 중요한 영역을 차지할 듯 보인다. 어떤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더라고 말이다. 

유난히 눈물을 많이 흘리는 축구 선수를 보며 타향살이와 축구의 어떤 마초적인 기질의 운동이 얼마나 많이 갈등요인을 유발하며 수십 수백억의 연봉을 받는 축구 선수가 저렇게 울일이 많을까? 라는 생각도 하지만 사실 그 영역과 무관하게 그는 가장 어려운 지금의 상황을 공감하는 것이라 본다. 때로는 감동으로 때로는 억울함으로 대개 우리가 보는 많은 경우의 수에서는 사실 감동보다는 억울함이 많이 내재돼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대대로 팍팍해 왔던 것이다. 그 팍팍함을 토로하기에 이 좋은 수단외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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