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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들

안소영

by 링마이벨 202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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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 저마다의 story-telling을 가지고 있다는 것 우리가 인식을 못하지만 저마다의 삶의 굴곡을 가지는 것 같다. 행복할 것 같았던 한 배우의 삶이 힘든 구비구비 굴곡과 슬픔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힘든것 같지만 연예계를 완전히 떠나서 행복하고 일상적 소소하게 삶을 사는 사람도 있는것 같다. 이제 생각해 보면 나이가 59년생이지면 이제 환갑을 지난 나이인 것이다. 항상 많을 듯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은 연예계 데뷔를 한것이 빨라서 또한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기를 얻다가 은막에서 tv 브라운관에서 안보이다 보니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것 같다. 우리가 아는 안소영은마치 유년시절이 없는 화려한 은막에서 보았던 그 시절의 안소영으로 멈춰 버린 것이다. 우리의 고정관념이 작동한 것이고 나를 설득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 바뀌어도 안소영은 한 개인화에 도달돼지 못하고 여기에 멈추게 된것이다. 

이 편견이 얼마나 한 사람을 슬프게 했을까? 이 고정관념이 시대를 거쳐도 시간이 몇십년이 흘러도 여기에 저장되고 멈추게 된것이다. 이러한 신념체계는 나이를 들면서 더 고정화돼고 더더욱 큰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게 된것이다. 아마도 이 선입견과 편견이 한사람의 주변을 얼마나 삭막하게 했는지 또한 얼마나 가족간의 불행을 가져오게 했는지 왜 한순간에 이러한 은막의 배우가 여러가지 삶의 굴곡을 가질 수 받게 없었는지는 상상하기 쉽지 않을 듯하네여! 결국은 우리의 불편한 사소한 호기심이 고정관념을 형성해서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관심도 아닌것이 하물며 사랑도 아닌 하나의 가쉽 커다란 삶의 변곡점을 만들었으니 참 가볃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뭐든지 다시  잘 살고 있어서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네! 안소영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만약 이분을 안다면 어느정도 연식이 된것이다. 오늘 검색어를 보다보니 이분이 검색어 1위에 오르셨다고 아니 어떤 썩좋아는 방송국은 아니지만 이러한 분들을 세상위로 다시 소환해서 한번 여러가지 상념을 적어본 것이다. 가족의 구성원이었다면 참으로 많은 슬픔과 외로움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당사자와 자녀에게 까지...가리워진 서로의 삶을 뒤로하고 우리의 욕심이 거기까지 내다볼 수 없고 우리가 그렇게 많은 예상을 하지못하고 우리의 삶이 그렇게 생각대로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더욱 황폐화 되었을 것이다.

왜 그러면 이러한 고정관념이 치밀하고 탄탄하게 자리잡혔을까 생각해 보니 우리가 힘들게 살아와서 그런다. 고정관념이란 상당히 편의적 기억장치라 생각하게 된다. 왜! 편의적으로 기억을 재해석 하게 되는 것일까? 왜 기억을 인식을 고정관념으로 관습화시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볼때 우리민족이 걸어온 길이 상당히 일제 강정기 36년이라고 하지만 1890년대 경제 자주화를 상실한 그때부터 이 강산에는 쪽바리들이, 그리고 해방후에는 미국애들이 경제를 약탈했다. 결국 정신문화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먹고 사는게 바빴기에 먹고 사는것이라고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excuse돼고 먹고사는것이 신앙이었던 시대 말이다. 그 시대에 먹고살기 바빴을때 먹고 살기 바쁘지 않았던 애들이 주로 가졌던 모든 사회의 기득권을 지금까지로 2020년까지 하나도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다. 편의적인 성적역할 그 성을 소비하였던 영화들 그 성을 소유했던 사람들이 그러한 가쉽체계의 메인테마였던 것이다. 역시 책임과 도덕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때, 일부다처제가 성립되지 않았던 사회 아예 제도적으로 허용돼었다면 오히려 줄었음직한 그 알량한 유교사회의 빈 껍데기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하였던 그때 말이다. 

한여배우로 살아가기에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지금이라도 상상만 하여도 넘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이 바뀌지 않았기에 지금처럼 me too가 횡횡하지도 인권이 셀럽에 대한 규제 책임도 지금도 없는데 그 당시 얼마나 많은 비상식과 억측이 난무했을까? 이러한 상류사회의 전횡과 악습폐악이 그대로 가쉽으로 흘러서 일반인들에게 흘러갓으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이 많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들어서 다시 한번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러한 비상식, 아니면 인간적인 면보 그동안 고정관념에 가려진 진실들이 하나둘 밝혀지는 것이 한 개인으로 봐서도 얼마나 보람있고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관심이 retro하기도 하지만 만약 어두우면 어두운 데로 밝으면 밝은데로 세상밖으로 나오는 것에 환영한다. 그리고 그만의 삶을 story-telling 해준다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바라볼수 있는 생각의 힘을 갖추게 될것이다. 한 여배우의 삶에서 그리고 역사라는 굽이굽이 숨겨진 진실들을 바라볼 수 있는 생각의 근육을 우리가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 온 삶만큼이나 더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한때 그러한 콘텐츠를 보며 욕망을 생각하던 사람도 이제는 세상을 볼 줄 하는 힘이 생겼듯이 말입니다. 욕망이란 얼마나 자연스럼것이라고 누구하나 이야기 해주던 사회에서 욕망이란 은밀하고 지저분한것이라고만 이야기하던 그 수많은 그 같잖은 미디어에서 도덕과 의무를 이야기 하던 사람들이 어느날 얼마나 더럽고 추하게 살았는지를 알았을때 느꼈던 수많은 좌절과 짜증을 다시는 우리 자식들에게는 주지 말아약 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글을 쓰다보면 솔직하게 쓰지못하고 나중에 도덕교과서 처럼 돼는것도 그 시대 그 세대의 소산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양성이 얼마나 큰 재산인지 한참을 지난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한때 우리가 신앙처럼 떠받들었던 배우의 삶이 에로에 묻히고 관능적이고 섹시하다고 생각되는 것 우리는 이러한 것에대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에게 은막에서 지금은 핸드폰만 켜도 세상에 천지가 다 들어가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 자녀에게도 성이라는 것에 포르노 범죄만 생각하게 하는데 한번도 성에 대해 살면서 1시간도 이야기한 적 없이 스스로 소화하고 스스로 탐닉하고 어른같지 않은 사춘기어른 살면서 너무 바쁘고 학원만 들락날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통과의례였던 삶의 중요한 한 부분들을 경험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고 오로지 성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이 바쁜 대한민국의 어른들 책임이 크다고 본다. 

자기는 뒤에서 야로 부리고 온갖 추악한 형태로 성을 경험하고 소비하면서 한번도 아들에게 자녀에게 성에대해서 성이가지는 그 즐거운 상상과 역할에 대해서 한번도 이야기 해보지 않고 30이 넘다보니 우리는 성을 소비하는 프로덕트로만 콘텐츠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도 이럴진대 60~70년대 여배우의 삶이 얼마나 황폐했을지는 말 안해도 다 알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이야기하는것만으로 힘들어 보인다. 막 이야기 해본다. 이 아침에 안소영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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