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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극단주의

by 링마이벨 202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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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극단에 내몰리는 것인가?  

먼저 분노는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가 까닭 없이 명백하게 멸시당한 것을 두고 복수하고 싶어 하는, 고통이 뒤따르는 욕구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만약 분노가 그런 것이라면, 분노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언제나 인류 전체가 아니라 이를테면 자신이나 자신의 친구를 해코지했거나 해코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분노에는 언젠가 복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즐거움이 수반된다. 분노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을 목표로 삼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준다. 

"분노란 꿀보다 달콤해서 인간의 가슴속에서 점점 커지는 법" 이게 무슨 말일까? 분노는 달콤하다. 음 아마도 우리가 막장드라마에서 또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가져가는 권선징악의 프레임에 적용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권선징악보다는 악을 권해서 유약한 마음을 더 강하게 분발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현실에서 느끼는 괴리는 바로 선함이 악을 이기지 못했을 때 그 괴리는 극장문을 나서면서 모든 이들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복수는 온 정신을 집중하고 쏟기에 분노에는 쾌감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는 상상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한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상대방의 불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한은 아주 상대적인 가치에 한정되기 마련인데 나는 사라지고 타인의 경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수치심을 느낄 것들을 재미 삼아 행하거나 말하는 것이다. 앙갚음하는 것은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하는 것이다. 모욕하는 사람이 쾌감을 느끼는 것은 남을 학대할 때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경멸이나 모욕 수치심이란 것들은 어찌 보면 나의 내적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려는 행위들인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요즘 일어나는 극단주의 경향이란 어찌보면 극도의 개인주의에서 발현했고 아마도 더욱더 그 기세를 키울만하다. 왜냐면 나는 극단주의라 이야기하는 것은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자와 피해를 보는 자로 나누어 볼 수 있고 현재는 이러한 극단을 정치적인 이해득실로 판단하고 더욱더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의 영역에 들어가면서 극단주의는 날개를 단 격이다. 특히 우리가 소비하는 대중적인 콘텐츠인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성이 없지만 말이다. 

여기에 우리의 문화적 습득 속도가 기술의 변화 속도로 다변화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방통행이 가속화된 것이다. 기술의 속도는 데이터의 범람을 놀랍도록 단순화시키고 있고 내가 원하는 길과 내가 가는 길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말미암아 센서 가득한 가로수길을 가는 것처럼 내가 갈 때만 불이 켜지도록 기술로 가끔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내 길 위에는 아무것도 신경 쓸 수가 없다.  속도가 결합하면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람의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색과 사고가 사라지고 본능에 가까운 반응을 하다 보니 우리는 반응만 하는 기계의 일부로 사물인터넷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0과 1을 좋아하는 기계처럼 즉문즉답을 하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먹고싶은 것 안 먹는 것, 사실은 인간이 기계처럼 되는 것이다. machine learning 우리는 하나의 사물로 객관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감정을 보살피지 못하다 보니 분노와 좌절 경멸에 대해 나의 감정은 학습하지 못하고 너무 생소하게 받아들이다 보니 더욱더 감정은 예민해지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어지고 가상공간의 세계에서 사는 어찌 보면 출국절차를 마치고 공항에서 기다리는 경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 사람도 아닌데 마음은 샌프란시스코로 가야 하는데 현실은 공항에서 이도 저도 아닌 경계인 주변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존재가 확실하지 않다 보니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존재적 표현은 사실 분노를 통한 방법밖에는 없다. 결국 이러한 분노를 통하여 경제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익으로 환원하며 그 마지막 존재감을 뜯어먹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대놓고 백주대낮에 도둑질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도덕도 인간의 가치도 없는 부류들이 그 상처받은 마지막 남은 살점을 하나하나 뜯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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