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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링마이벨 2019. 6. 1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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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마지막 끝에 땅. 흥남부두에서 철수한 피란한사람들이 착륙한 땅이기도 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갑자기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갖히게 된 땅 어찌보면 대한민국 남단에서 작은 남과북의 축소판으로 남아있는 땅 거제도 역사적으로 보면 이순신장군의 한산도섬이 있으면 한산대첩과 칠전량해전등의 격전장이었다. 섬의 최고봉은 가라산(580m)이며 그밖의 계룡산(554.9m) 대금산(437.5m) 리아스식 해안의 특징인 복잡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리아스’란 말은 갈리시아어  하구를 뜻하는 말인 ‘리아스(rías, 단수 ría)’에서 왔다. 갈리시아란 스페인 북부의 갈리시아란 지명에서 쓰던 강의 하구를 뜻하는 단어이다. 이데올르기의 땅 거제, 프란시스도드 소장이 포로로 잡혀있음, 미군1명사망에 포로 3024명 가까이 포로 사살됨, 막사를 치고 포로수용소를 만들었다. 17만 5천명의 포로들(중국군2만명)이 갖혀 있던 땅이 되었다. 거제수용소에서 시작한 대한반공청년단 1951.8.7/ 대한반공청년단 중앙단 창단 1952.1.4 2개의 단체가 생겼다. 이관순이 단장이었다. 해방동맹조직 이학구 해방동맹 13사단 참모장이출신으로 제발로 투항한 장교였었다. 이학구가 북에 투쟁이 지속되었다. 인공기와 태극기가 좌우익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좌우익의 처절한 투쟁이 시작되었는데 아마도 이런투쟁을 미국에서 조장하지 않았나 싶다. 대개 반공단체에서 생존했던 많은 사람들이 목사가 돼었다는 사실은 주요한 요인이 돼기도 했다. 아무래도 종교가 이러한 정치적인 성격을 띄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노력들이 이러한 경향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 종교적인 자체적인 요인이 아니라 반공 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어는정도 정치적인 영향력 등을 여기에 승부의식이 발동되어 엄청난 체제이념의 갈등양산이었다. 포로반환은 6.25의 종전협사의 결과로서 협의 대상이었으나 공산포로들은 미군포로들의 공산의식이 있다는 부분을 발표하여 공산주의가 우세하다는 것을 이념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군들의 포로교육은 미군의 보고서에 의하면 민주주의 체제하 살기좋은 것이고 반공에 대한 태도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cia 교육에 대한 것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전향공작에는 미국선교서 해롤드보켈은 공산주의가 좋지핞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포로들은 풀어주면서 실질적으로는 죽은 것처럼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빨갱이 사용을 거제도 수용소에서 학살대상으로 삼으면서 포로들을 이데올르기로서 사용하였다. 

거제도 수용소 자리 미국은 강제송환의 제네바 원칙을 깨고 자유원칙을 이야기 했다. 공산측은 모든 포로를 강제 모두다 송환하는 원칙을 세웠으나 남한에서는 자유원칙을 이야기 하는 것은 돌아가지 않는 것을 이념적인 승리로 규정할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포로수용소에서 의사를 묻는 송환 의사를 묻는 절차가 있었다. 갈수도 없고 남아있을 수도 없는 외로운 섬이 되어 있는 것이다. 몸에 반공이라는 문신을 새기고 이북에 안간다는 것이 입증으로서 쓴 것이다. 태극기, 반공 이러한 문신을 만들었는데 입으로 물어뜯어 문신을 새기기도 했습니다. UN에서 남과 북을 의사 결정하는 전단지를 거짓으로 만들어 북을 원하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포로들을 남과 북으로 분리하여 별도의 수용소로 관리하였다. 거제도는 내가 봄에 처음으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종교적인 갈등 이념과 이데올르기가 양산한 최고의 갈등의 복합적인 결정판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념의 결정판이 지금껏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태극기 부대에서 지금도 우리의 광화문에서... 거제도에서 미군이 했던 짓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짓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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