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포 정치’는 혁명력 2년 프레리알 꼬일(口에년 6월 10일)의 법령에 근거해 실행되었으며,상황의 산물이었다. 프레리알 1일에 앙 리 아드미라라는 남자가 콜로 데르부아를 저격했고, 프 레리알 4일에는 세실 르노라는 여인이 로베스피에르를 암살하려 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더욱이 그녀는 반혁명적인 신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처럼 공화국 군대가 전투에 돌입하려는 순간에 도 ‘특권계급의 음모’가 여전했고 반혁명이 항상적인 정치 세력임이 명 백한 듯 보였다. 공포 정치의 물결이 파리의 구들을 훨쓸었고, 처벌의 열정이 폭발했다..그러나 이 무렵에 이러한 반응은 이미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공포 정치는 도식화되고 강화되었다. 쿠통은 프레리알 22일 의 법을 제안한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몇 번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