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설날이 끝나고 영하 10도를 더 내려가는 추운 날이 1~2주일 끝나면 봄이 왔으면 좋겠다.
K본부에서 방영한 <다큐 인사이트> 시대를 뛰어넘는 명곡의 향연, ‘마스터 송창식 편을 보고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아래의 사진을 보고 느낀 바를 몇 자 적어본다.
쎄시봉 기사검색을 하다가 자율화라는 구간에 대해 ㅠ ㅠ
사실 우리가 겪었던 자율화는 진정한 자율화가 아니었다. 체제의 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실은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일종의 기준선을 설정한 guideline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불과 30년 전에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단속하고 머리를 가위로 강제로 자르는 저 신문에 올린 사진을 보자! mz들이 이러한 광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귀를 덮는 머리와 무릎 위 17cm 이상 올라가 있는 스커트가 단속대상이었다. 자율화는 국민들의 일상을 검열한 대표적인 사례이고 그 지침인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도 감찰의 대상으로 하나의 통제집단인 군조직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복장에 대한 검열이 위와 같았다면 다음은 노래가사 검열이다. 아무래도 민중과 가장 직결적인 "일상"이랑 연관되어 있었으니 군사정권에서 얼마나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 바로 노래가사와 영화이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tv보급율이 100%가 아니었으니 영화관이라는 장소와 노래가사는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까? 생각해 본다.
고래사냥은 시의 적절치 않음, 반일감정, 통행금지규정위반,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정권에 대한 도전, 유신비판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지만 그 당시 서슬 퍼런 정권이 통치했을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선배들의 엄청난 피와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인 것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듯 말이다.
사실 표현의 자유와 책임은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나 동전 앞뒤면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표현의 자유는 어떤 책임도 따르지 않고 어떤 책임의식 없이 표현의 자유를 무한정 누리는 일부 사람들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과실을 혼자서 독식하는 불평등의 구조인 것이다. 죽 쒀서 개준 꼴이다.
양복이 만들어진 시대가 다름 아닌 프랑스혁명 그 이후라고 한다. 아마도 시대적으로 그동안 사치와 방탕했던 부르주아들을 퇴치하고 혁명으로 만들어진 세대는 옷의 치장을 줄이고 즉 옷에 보석과 장신구를 치장한 화려한 의복을 즐겼는데 혁명을 했던 혁명파 상퀼로드(긴바지를 입은 사람들-당시귀족의 반바지에 대항한)라고 회자되었고 아마도 단순함이 미덕이었던 때로 극도의 단순함이 댄디즘이라는 문화적인 의복 코드로 더욱더 단순화 되면서 엄격함과 극도의 통제력이 필요한 의복형태로 양복이 나왔다고 한다. 극도의 검소한 형태 그동안 귀족들이 지향하던 화려함과 몸에 착 달라붙고 몸매를 드러냈던 패션을 없애고 극도의 어두움과 단순함을 표현하는 의복형태로 발전하면서 양복이 나왔다고 한다.
교복에서 자율화를 통해 머리도 편하게 교복을 못 입게 하니 교복을 입는 학교가 반대급부로 늘어나게 되었다. 허지만 바로 10년 전까지만 아니 오늘도 노래가사는 아직도 여전히 이슈화되는 이유는 노래가사는 우리의 정서와 일상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조만간 다시 MZ들의 자유분방함도 엄격함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그게 2025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불황이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 앞에서 장사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세대나 끊임없는 흥망성쇠를 지속하는 형태로 하나의 문화일변도로 지속되는 불가능하니 흥하고 쇄하고 새로운 것이 발생하고 허지만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한순간도 사라진 적은 없었다. 단지 잠깐 주춤하고 양보했을 뿐이지... 사실 우리가 겪는 오늘날의 아픔은 우리만의 소산이 아니고 후배들이랑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책임이란 영역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고 자율스럽지도 않다.
나는 요즘 MZ라 상업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규정짓는 우리의 문화에서 누구보다 그들이 안돼 보인다. 부모의 재력으로 SPEC 쌓기의 대상으로 또한 무한경쟁의 Definition으로 혼자 cvs에서 라면에 삼각김밥, 도시락을 혼자 먹는 세대, 공중부양세대로 학원과 학원을 공중부양으로 딱한 발 욱 밟지 않고 공간이동하는 세대, 하나에 꽂히면 커다란 소비를 하는 비이성적 소비세대 왜냐하면 한 번도 내 주관으로 내 삶을 살아가 보지 못한 세대,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는 세대 이건 이 욕마저 못하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세대 그래서 그들의 욕에 나는 정이 간다. 그래 그 욕이라도 해야지 안 하면 미치 것이라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끊임없이 자기의 가이드라인을 자기 꼴리는 대로 내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자율화는 내가 한 커다란 잘못에 대한 비판을 자율화라는 방편으로 관심을 이동시키는 전략인데 넘 파렴치한 정책이다. 목적은 명확하다. 정권을 연장시켜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는 사람들을 포커싱해 보면 실은 그리 누렸으면서도 또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책임도 안 하고 국가라는 틀 안에서 가장 이득과 이익을 누렸던 사람이 끊임없이 그 자율화 구간에 기생하는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고갤 돌려 돌아보면 누가 기생충인지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은 그 고혈은 누구의 것인가?
5분 브리핑에도 자유란 단어를 20-30회 이야기하는 사람 수없이 누리는 자유에도 그것을 의무라고 말하는 사람, 왕조적 권력을 누리면서도 의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logic의 틀을 썼는데 하나도 logic이 없어 보이고 권력으로 보이는 사람 그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