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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아버지

by 링마이벨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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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름이 썩 나에게는 친숙하지 않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의 부재를 일상으로 평생 자라왔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웃방에서 기침을 많이 하셨고 항상 누워 계셨던 것 같다. 이부자리와 함께 했고 항상 내이름을 부르며 엄마한테 아버지가 원하는 바를 일상적 심부름이 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부재는 사실 청소년기를 지나치면서 어머니의 자리만으로 빈자리 없이 자라왔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과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삶을 공유해야할 때는 그러한 아버지의 부재와 아버지의 역할을 보아오지 못했던 나로서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아이들이 또한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 일때는 덜하지만 대학을 가고 아이들이 이제는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 할때 그러한 이야기의 대한 필요한 중재 역할과 서로다른 주장을 할때 거침없아 나아가돼 그 사이 갈등관계와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역할이 필요할때 많이 힘들어 지는 것 같다. 그에 못지 않게 항상 내옆을 지켜주는 아내의 역할과 아내의 존중감을 아이들과 협의해 지켜야 하는 문제들이 대두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갈등구조의 중심에 서서 온전히 외롭지 않게 그 자리를 지키면서 가족을 앞으로 끌고 나가야 하는 문제를 접할때 가끔 직장생활 만큼의 긴장감을 가지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할때 그 주장에 대해 어른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 문제 못지않게 존중감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과거 아버지들이 가지고 갔던 진지함과 위엄이 지금에 와서 필요가 없어 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요즘 아버지는 그 때 아버지들만큼 강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사실이다. 많이 유약해 졌을 뿐더러 긴장에 대해 이겨낼 수 있는 내부적인 소양이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진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무게를 느끼고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진정한 아버지 내가 느꼈던 아버지 아프면서도 모든 일에 관여하고 하나도 내 몸아프다고 내몸에만 치중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역할마저도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해 보인다. 우리의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짊어지고 살아왔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형편이 나아졌지만 나는 내 아버지, 어머니 만큼 세상을 잘 살아가지 못해 보인다. 그 힘든 시기를 혼자서 터벅 터벅 걸어오실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나왔을지 살면서 느끼는 것은 삶과 자식에 대한 애착 이었던 것이다. 집착이라면 집착이고 애증이라면 애증일텐데 모든 것을 그 이유 하나만으로 살아오신 것이다. 그 삶에 대해 가끔 회의가 들 수도 있었을 텐데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이가 들면서 살아온 날들이 쌓이고 쌓아지면서 느끼는 것이 좀 안타깝지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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