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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broken

소리

by 링마이벨 2021.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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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의소리는 대개는 감각기관이 살아나는 아침에 집중돼어 있었다. 시골이다 보니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라 시골에서 슬레이트라는 석면으로 만든 지붕아래 아마도 건물의 모든 대들보는 큰 통나무로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온돌이라 지속적으로 아궁이에 불을 넣지 않으면 그야물로 냉골이었던 것이다. 겨울에 아침에 회상해 보면 아궁이에서 아침밥을 가마솥으로 지었기 때문에 불을 때면 아침에 방바닥을 따끈따끈 해지면 슬슬 잠이 깨는 것이다. 열로서 모닝콜을 하게 돼는 것인 것이다. 따스한 온기로 방바닥으로 스물스물 올라오면 어머니는 도마에서 파며 양파 감자 고구마등 두들기는 소리는 얼마나 경쾌했는지 모른다. 그릇과 그릇 부닥치는 소리, 둔탁한 철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소리에서 찬장을 여는 소리며, 살랑살랑 어머니가 내딛는 발걸음 소리며 아침에 그 소리는 얼마나 내 삶의 양분이 돼었는지 모른다. 

 다라에서 물 긷는소리, 우물물에서 마중물 넣으며 펌프질 소리, 마른나무에서 불이 옮겨질때 튀는 탁탁소리등, 우리는 아침에 얼마나 많은 소리를 듣고 자랐는지 모른다. 내 고향집 아침의 소리들이다. 유난히 소리에 민감하고 촉각이 곤두서는 이유는 나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보는것보다 듣는것이 시각 보다는 청각이 발달할 수 밖에없는 장소였던 것이다. "Seeing is believing."라는 영어 시험문제가 많았던 때인것 같다. 아마도 그때는 믿음이 유난히 부족했던 시기 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 제약, 구속, 거짓이 유난히 많았고 믿음이 많이 부족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나는 소리를 들으며 컷다. 어머니의 잔소리, 형의 잔소리, 선생님의 잔소리 대개 생각해보면 "부지런해야 한다."라거나 "눈뜨고 코 베여간다."라는 말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왜란과 일제강정기를 거치면서 코를베어가 무덤을 만든 놈들, 그 아래 교육받고 그들이 메인인 세상에서 눈을 뜨고 있는데 산사람의 코를 베여가니!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믿지 못하던 때에 믿을 수 없는 사람들과 살아가니 노골적으로 사실에 대한 진위여부를 확인해나갈 수 없는 세상이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는 소리에 많이 의지했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보니 잘 듣는 능력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똑같은 힌트에 해석능력이 중요한 세상, 커뮤니케이션에서 쌍방 소통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일방적으로 들으라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나이로, 권위로, 직위로, 돈으로, 국가로, 권력으로 오로시 일방적으로 듣는걸 강요하던 때에 그 피로한 귀를 호강시키고 부드럽게 해주었던 고향의 아침소리 한낮의 소리 저녁의 소리들이 생각난다. 마을에서 깡통차기 하던 아이들의 노는소리, 이상하게도 친구의 집에 가서 우리가 했던 이야기는 무언가 생각해 보았더니, " 친구야, 놀자!"라는 이야기 였던 것 같다. 놀이문화가 적던시대에 놀이는 사람이 전제돼어야만 했다. 최소한 3~4사람 길에서 놀때는 오징어라고 맨땅에 금을 그어 놀이를 했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고, 얼음배 위에서 놀고, 불놀이 하고 참 놀이는 자연친화적이었던 것 같다. 혼자서 놀수 없다보니 친구가 필요했고 친구와 오랫동안 이 관계가 유지돼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관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창조적이지 않으면 놀이가 없었던 시대, 놀이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이었다. 밥먹는 것 보다 재미있고, 무엇보다 우선순위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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