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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justice 저스티스

by 링마이벨 2022.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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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는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이야기 한다. 정의란 것이 존재 한다면 정의는 아마도 멀다는 것 멀지않으면 정의는 아닌듯 하다. 아마도 정의가 어려운 것은 정의는 애초에 실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것 그 전제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정의를 지속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의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오랫만에 보는 배우이여서 그런가? 술주정뱅이에서 이제는 정의를 연기하는 배우로 아마도 케이지는 미국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애로배우에 가까운가? 아님 액션배우에 가까운가? 내가 볼때는 어정쩡한 액션배우이지만 애로까직 가능한 배우로 생각돼는 듯 하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불행앞에서 엄청난 폭력에 노출돼었고 그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한 가장앞에 그 성폭력을 한 사람을 찾아서 없애주면서 아마도 그게 하나의 작전인지는 몰라도 그 가해자를 없애주고 누군가에게 또다른 폭력을 사주하게 돼는 것이다. 왜 답답하게 저런것을 경찰에 알리지 않고 폭력의 사주를 하게 될까?라는 생각과 그럼에도 실행할 수 밖에 없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 그러한 일을 진행케 된다. 우리의 일상과 그 반복에서 이러한 거대한 폭력과 조우하게 된다면 한 개인이 겪는 이 돌파는 영화처럼 가능할까? 아마도 영화일지 모른다. 

 

우리의 불합리 부조리는 일상 어디에든 존재한다. 오늘 나의 일상이 그럴것이고 나의 직장 나의 사회생활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모든 플롯이 그럴 수도 있다. 영화의 폭력을 마주 하지 않으면 나는 영화를 끊을 수도 있다. 액션 카테고리는 사실 나를 흥분시키기도 하고 완전 몰입을 시키기도 한다. 나는 어느 정도 폭력의 중독될 수도 있다. 가상이라도 어느 정도는 나의 뇌를 전율시키고 있고 아마도 어느 정도 난 이미 중독일 수도 있다. 폭력에 대한 일상은 현실이든 가상이든 내 뇌를 이미 자극하고 있고 나의 자극은 더욱더 강한 자극을 원하여 더욱더 폭력적인 코드가 나의 콘텐츠 선택의 주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극적이고 이렇게 폭력적이어야 재밌는 콘텐츠의 조건이 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exciting'한 콘텐츠의 기본 조건중 상위 요인일 수도 있다. 자극은 몰입을 가져오고 몰입은 아마도 카타르시스를 가져올 것이리라! 사실 어느 정도 진행하다 보면 감독도 극의 긴장을 위해서 폭력에 올인하다 보면 갑자기 극은 어디가고 짜릿한 폭력 장면과 액션 장면밖에는 없게 된다. 아마도 우리의 기다리지 못하는 인간의 습성을 가장 자극적으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직업의식의 결과일 것이다. 

 

영화 감독이 가끔 경찰이 조폭보다도 더 조폭스러 보일때가 있다. 연기자는 저 연기를 하고 저 몰입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볼때가 있다. 왜냐하면 연기자중에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어떤 때는 영화를 하고 1달 내지 3개월 동안 극의 주인공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서 일상이 어려웠었다는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영화이지만 감독이고 연기자고 아마도 좋은 영화 몰입이 강했던 영화를 만든 후에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만약 와이프의 감당하지 못한 폭력을 응징해 준다면 현실에서 그 누군가가, 아마도 나도 아마 모든 비용과 수고를 들여서라도 그것에 대한 값을 지불했을 것이다. 어떤 줄거리를 가지고 갈까? 이런 영화를 시작한다는게 Hungry rabbit jump 이건 암호도 아니고 영화는 재밋어 진다. 뭐때문에 가족이 나타났고 무조건적인 명령들 그런데 나의 일상과 무관하지 않고 그가 그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일상은 지속되고 삶은 지속된다.  

우리는 왜 영화를 계속 보게 돼는 것일까?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이제 영화에 감동은 우리가 과거 영화를 보는 이유 전체는 아니더라고 아직도 감동이라는 요소는 있지만 우리는 넘 자극적이고 빠르고 강한 몰입을 하려면 아마도 감독은 폭력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네가 넷플릭스 연작을 잘 안보는 이유도 그 시간과 본 만큼 감동은 없고 강렬한 폭력장면외에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정의라는 영화 제목 자체가 어울리지도 않는다. 이미 영화가 정의스럽지 않았으니까? 더 이상의 의미를 두지말자! 영화가 재밌었어!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다. 애초에 감동을 원했으면 다큐멘타리를 봐야지! 그런데 희한하게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을 때는 이러한 폭력적 중독과 일상이 어느 정도 지난후에 다시 한번 찾게 된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오아시스이고 영화로 뇌를 쫄이고 긴장시키고 그리고 나름대로 지쳤을때쯤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나의 루틴인것이다. 어쩔 수 없는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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