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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broken

탕수육

by 링마이벨 202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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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탕수육은 최고의 중국 음식이다. 졸업식마다 짜장면을 먹었고 초중고대학까지 어김없이 뭔가 끝나는 날은 그저 아무 생각없이 중국집으로 향했고 수십년간 끊임없는 전통이고 또한 딱히 무언가를 먹는 것이 결정 돼지 않았을때 쉽사리 선택하는 메뉴인것이다. 구지 맛집을 검색하지 않아도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는 것이 관례고 세상사는 재미로 보여지지만 나는 아직 편안하고 그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 갈수 있는 식당이다. 바삭하고 어찌보면 크런치의 시초로 거기에 스윗 소스는 또 어떻고 우린 이 음식에 자장면에 또는 짬뽕을 시키고 중간에 공동메뉴로 탕수육은 그 어울림이었고 거기에 중국식 고량주 빼갈을 한병시켜 곁들이면 아주 잛은 시간에 그런 만족을 주는 메뉴는 없었다. 일상과 먹는 즐거움으로 치면 그렇게 행복감을 주고 내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음식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정도로 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거기에도 약간의 의례가 필요하겠지만 먼저, 대중소 size를 고민해 보고, 나중에 생긴 의식이지만 부먹일지 찍먹일지는 후에 생긴 의식이지만 얼마나 기계적이었으면 나름대로 이러한 절차를 하나 만들었을까? 그정도로 이 메뉴는 고를때 커다란 고민도 거추장한 질문도 필요없는 그냥 하나의 루틴인것이다. 무조건 대였다. 부어먹던 찍어 먹던것이 하나의 문제도 돼지 않던 그런 걸 왜물어볼까?라는 생각들 아니면 닥치고 먹어라고 이야기 하던 우리의 무조건적이고 반사적인 식습관을 만들어 주었던 그 정든 시절의 기억들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는 이성적으로 양과 질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고 양적인 탐닉은 기본이었고 거기에 어떤 질적인 차이를 줄것을 고민하던 때에서 배부르지 않아도 질적인 만족을 찾게 돼었다는 것이다. 그 시절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고 현재에 탐닉하는 것도 죄악시 할 필요는 없지만 그때는 그러한 이유가 충분했다. 행복할 짬이 없었고 항상 배고프던 내 어머니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배 곯지 말고 끼니 거르지 말고 빈속에 술먹지 말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던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가치중에 최고의 가치는 배 곯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비틀어 표면 아마도 비슷하리라 생각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또한 아재라 할것이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는 못하겠다. 

 

탕수육 짜장면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그 풍요로움을 상상할 수 있을까? 단무지는 달콤 쌉싸름하고 사이드 메뉴처럼 느꼈던 시절 음식이 나오기 전에 단무지는 벌써 2~3번 리필이 돼고 그러면 아예 대접에 한 접시 나오고, 조금있다가 김이 무럭무럭나는 짜장면이 나오면 고추가루를 뿌리고 비벼놓아 몇 저갈 후루룩 후루룩 뜨면 짜장면 먹는게 아까워 질때 난데없이 그 버릇없이 느슨한 탕수육이 나온다. 밀가루에 입힌 돼지 고기가 바삭 바삭, 거기에 탕수육 소스 듬뿍 묻혀서 한입 베어 먹을때 거기에 노릇노릇한 우리의 서비스 군만두 간장에 조금 묻혀서 한입베어 먹었을때 그 행복감을 상상할 수 있으세요! 배달이면 어떻고 직접 먹으면 어떻겠는가?  하다가 입에서 단짝한 소스가 녹아들때 그 촉각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어느날 구멍이 숭숭난 2세대 탕수육이 나오고 그 구멍으로 소스가 쏙쏙 들어가 맺힐때 과연 탕수육의 진화는 가히 럭셔리 해지고 있었다. 소스는 더욱 걸쭉해지고 돼지고기는 더욱 야들거렸고 튀김옷은 얇게 더욱 바삭하게 변하여 같고 입은 더욱 민감해져만 갔다. 왜냐면 우리의 입이 고급화 된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왠만한 만족을 얻으려면 보통 아닌 최고의 수준이 돼어야 하지 않을까 짐작을 해본다. 왜냐면 그 정도로 우리도 살림이 많이 나아졌고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잃으면 얻는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는 그 평범한 말에서 나는 거부할 수 없는 가치를 깨닫게 된다. 지극히 평범함이 진리고 깨달음이고 우리의 진정한 가치라는 것을 말이다.

 

탕수육의 근본은 맛과 포만감도 있었지만 그 힘들었을때 같이 나와 그자리를 함께한 많은 사람들이다. 업무적이든 개인적이든 그 자리를 공유하고 그 자리에서 이야기한 모든 것들이 모두 자산이었던 것이다. 맛은 그당시 그 시절의 기억을 타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모두가 즐겁고 유쾌했던 자리는 아니었겠지만, 그 느낌을 공유하고 같이 술잔을 기울였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해후를 기원합니다.  내가 가졌던 그 시절의 욕심과 바램들은 어디로 다 사라졌고 그때 그 사람들이 생각나고 그리울 뿐이다. 고량주 몇병을 들이키고 난 후 난 술도 쫌하지만 거리에 나왔을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그 시절의 헛된 허영심이 부러울 뿐이다. 아둥바둥 살고 작은것에 탐닉하던 지금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세심함이 그립고 그 사람들이 보고싶을 뿐이다. 다시금 만나면 아둥바둥 싸우기도 불만도 많겠지만 변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 요즘 모든것이 변해도 너무빨리 변하다는 말을 하면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 거울속의 나를 보면서 만족해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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