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원의 신화 – 우리는 ‘처음’을 믿고 싶어 한다
- 인간은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진짜’라는 영속적인 것을 통해 안심하고 싶어 해.
- ‘원조’란 **기원(origin)**과 닿아 있는 개념.
→ 기원에는 순수함, 정통성, 진실성이 깃들어 있다고 느끼는 거야.
예:
- "원조 평양냉면"
- "장인의 손맛"
- "오리지널 리바이스 501"
→ 브랜드보다 "기원"이 더 가치 있게 여겨지는 현상
2. 심리적 안정감 – 진짜는 ‘믿을 수 있는 것’
-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진짜를 찾음으로써 안정감을 느껴.
- ‘진짜 사랑’, ‘진짜 웃음’ 같은 표현은 의심 없는 진정성을 의미해.
🤔 가짜가 많은 세상일수록, 진짜에 대한 갈망은 커져.
→ 이건 디지털 세상에서의 아날로그 감성의 복귀와도 연결돼.
3. 사회적 권위 – 진짜는 ‘인정받는 것’
- “내가 가진 건 진짜야” → 소속감과 우월감을 동시에 줌
- 진짜/원조는 가치와 정체성을 담는 상징이 됨
예:
- 한식의 ‘진짜 국물 맛’
- 미술품의 진위 논란 → ‘진품’ 여부에 따라 수백억 차이
- 패션에서의 오리지널 vs 짝퉁
→ 진짜는 ‘권위’를 만들어
4. 문화적 코드 – 진짜는 ‘이야기가 있는 것’
- 원조에는 스토리가 있어.
→ 사람들은 제품보다 그에 얽힌 서사에 열광해.
예:
- “3대째 이어온 전통의 수타면”
- “1903년부터 내려온 와이너리”
→ 이건 단순한 맛을 넘어선 시간의 축적이자 기억의 마케팅
5. 철학적 본능 – 진짜를 통해 ‘진리를 확인’하려는 존재
- 플라톤은 "이데아"를 진짜라고 봤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 그림자라고 했지.
→ 우리는 끊임없이 "진짜 세계", "진짜 나", "진짜 의미"를 찾고 있어.
요약: 왜 우리는 진짜에 끌리는가?
🔥 기원 추구 본능 | 인간은 ‘처음’에 의미를 부여함 |
🧠 심리적 안정 욕구 | 진짜는 믿음과 안전함을 줌 |
💬 사회적 인정과 권위 | 진짜를 가지면 자부심이 생김 |
📖 스토리텔링 효과 | 원조엔 감동적 내러티브가 있음 |
🧭 진리 탐색 욕구 | 진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함 |
정의 | 존재하는 것, 실체 | 옳은 것, 사실, 타당한 주장 |
본질 | 감각 또는 경험 가능한 세계 | 논리 또는 개념의 일치 |
예시 | 진짜 바위, 진짜 피자 |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 |
- **실재(Real)**는 존재의 차원이고
- **진리(Truth)**는 의미와 판단의 차원이야.
→ 뭔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게 '옳다'고 할 수는 없어.
2. 예시로 이해하기
- 진짜 뉴스라 불리는 것이 진실한 뉴스는 아닐 수 있어.
- 진짜 사람이라고 해서 진정성 있는 사람은 아닐 수도 있어.
- 진짜 고통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항상 도덕적으로 옳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아.
그러니까 "진짜 있음"은 "진리임"을 보장하지 않아.
3. 언어의 함정: '진짜'라는 말의 이중성
우리는 종종 다음처럼 말하지:
- "그 사람은 진짜야" (→ 진실되고 믿을 만하다는 뜻)
- "진짜 금이야" (→ 모조품이 아님을 뜻함)
하지만 여기서 ‘진짜’는 진리라기보단, 위조가 아니라는 뜻에 가깝지.
→ 즉, ‘진짜’는 거짓이 아니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그게 진리라는 보장은 아님
4. 현대 철학자들의 관점
플라톤 | 진리는 '이데아' 세계에 있음. 지금 우리가 보는 '진짜'는 그 그림자 |
니체 | 진리는 해석의 문제일 뿐. ‘진짜’도 ‘진리’도 권력의 산물일 수 있음 |
푸코 | 진리조차도 담론과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 우리가 믿는 진짜는 구성된 것일 수 있음 |
“진짜는 감각의 증거고, 진리는 개념의 결론이다.”
→ 둘이 같을 수도 있지만, 자주 엇갈린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늘 진짜처럼 보이는 것과 진리처럼 들리는 것 사이를 방황해.
결론: 진짜는 진리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를 통해 진리에 접근하려 한다.
- 가짜와 모조가 넘치는 시대에
- 진짜를 붙잡아야만
- 진리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잘못된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아마도 허상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허상만을 보면서 동굴에서 평생 살아나가는 우리의 삶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밤에 생각해본다. 두번다시 오지 않을 나의 삶에서 우리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유약하고 얼마나 잘못돼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개연성이 이밤에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허상의 삶에서 허상을 단 한번도 허상이라고 의심하지 못하고 삶을 끝마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번도 그 허상에서 그 허상임을 자각하지 못한 삶과 그 허상을 진짜라고 믿고 그 믿음에 생과사를 걸어본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불행했을지 모른다.
모조보다 더 모조스럽고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일들이 여러가지 생기는 이 디지털시대를 감정을 치유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쉽지않은 감정을 원복시키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