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항은 안다.

2025. 6. 21. 14:17·Culture
728x90
반응형

나는 살아있다.
그것이 이토록 무거운 죄가 될 줄은 몰랐다.
하늘도 땅도 나를 밀어내는 이 작은 항구에서,
나는 내 가족의 관을 바라본다.
"왜 당신만 살아남았냐"고 묻는 눈동자들이,
칼날처럼 나를 쳐다본다.
그러나 그날, 나는 같이 가려 했다.
하지만 아이 손이, 아내의 몸이,
차디찬 물속에서 나를 밀어냈다.
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죽을 용기도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가장이었다.
밥을 벌어야 했고, 병든 아내를 돌봐야 했고,
학교를 포기한 아이에게 미안해해야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는 굶주림과 죄책감의 반복이었다.
일터는 나를 쓸모없다 했고,
정부는 "당신은 아직 신청 자격이 안 된다"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사람"이 아니라
"통계 밖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구청의 창은 높았고,
나는 자꾸 작아졌다.

 

가족은 마지막 남은 공동체라 했다.
하지만 내 가정은,
내 손으로 천천히 무너져갔다.
복지? 제도?
그 단어들은
우리 집안 벽처럼 금이 가고도 아무도 몰랐다.
아내는 통증을 참고 웃었고,
아들은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
나는 어느새
세상의 시끄러운 흐름에서 밀려난,
조용한 침몰의 배에 있었다.


죽음을 택한 것은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나 하나의 무능이
세 사람의 목숨을 삼켰다.
하지만 내게도 묻고 싶다.
그렇게 만든 이 사회는
정말 아무 잘못이 없는가?
가족을 구걸하는 하루,
치욕을 이겨내지 못해
나는 어둠을 택했다.
그 선택은 용서받지 못할까.

 

나는 지금 살아 있다.
그것이 이 가족에 대한
가장 큰 모욕처럼 느껴진다.
죽은 자보다
살아남은 자가 더 고통스러운 시간.
하지만 나는 증언하고 싶다.
"가족만으로는 살 수 없는 시대"였노라고.
내가 바란 것은
기적이 아니라,
단지 하루 세 끼와
감염된 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을까?

 

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내 가족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들의 숨을 앗아간 건
세상의 무관심이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결단한 건
나였으니까.
나는 가장이란 이름 아래
사랑보다 생존을 강요했고,
포기보다 책임을 택했다.
그 결과가 죽음이었다면,
그 책임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내 몫이다.


나는 죽음을 합리화했다.
“이젠 끝내야 해.”
그 말을 혼잣말처럼 반복했다.
아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아이들이 무력하게 침묵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말리지도, 외치지도 못했다.
죽음은 차라리 평화로울 것 같았다.
그 생각을 입 밖에 꺼낸 순간,
나는 이미 죄인이었다.
희망을 끝낸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창피했다.
“아버지로서 실패했다”는 자각이
나를 입 다물게 했다.
가족에게까지 내 무력함을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렇다 해도 나는,
그 손을 잡을 용기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족도 구할 수 없었다.

 

나는 침묵했다.
아이의 눈에 고인 눈물에도,
아내가 헛헛하게 웃는 얼굴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너지는 소리를
남들이 들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그 침묵은,
가족을 더 깊은 어둠으로 밀었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말리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함께 무너지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비난받아야 한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살아남기 전까지
너무나 많은 잘못을 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유산처럼 남긴 자,
그 이름이 바로 나다.
사회가 나를 외면한 것도 맞지만,
그 사회에 맞설 힘이 내게 없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내 입으로 말한다.
“나는, 정말로 죄인이다.”

 
 

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내 가족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들의 숨을 앗아간 건
세상의 무관심이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결단한 건
나였으니까.
나는 가장이란 이름 아래
사랑보다 생존을 강요했고,
포기보다 책임을 택했다.
그 결과가 죽음이었다면,
그 책임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내 몫이다.

 

나는 죽음을 합리화했다.
“이젠 끝내야 해.”
그 말을 혼잣말처럼 반복했다.
아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아이들이 무력하게 침묵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말리지도, 외치지도 못했다.
죽음은 차라리 평화로울 것 같았다.
그 생각을 입 밖에 꺼낸 순간,
나는 이미 죄인이었다.
희망을 끝낸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창피했다.
“아버지로서 실패했다”는 자각이
나를 입 다물게 했다.
가족에게까지 내 무력함을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렇다 해도 나는,
그 손을 잡을 용기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족도 구할 수 없었다.

 

나는 침묵했다.
아이의 눈에 고인 눈물에도,
아내가 헛헛하게 웃는 얼굴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너지는 소리를
남들이 들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그 침묵은,
가족을 더 깊은 어둠으로 밀었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말리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함께 무너지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비난받아야 한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살아남기 전까지
너무나 많은 잘못을 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유산처럼 남긴 자,
그 이름이 바로 나다.
사회가 나를 외면한 것도 맞지만,
그 사회에 맞설 힘이 내게 없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내 입으로 말한다.
“나는, 정말로 죄인이다.

728x90
반응형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새창열림)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재정지출
  • 상법개정에 따른 삼성전자 주주의 가능성
  • 왜 하필이면 딸기밭 이었을까?
  • 행복하기를...
링마이벨
링마이벨
행복할 수 있다면 행복을 이야기 한다면 그런데 행복이 뭐지! 우리가 이야기 하는 행복이란 건강함이란? 우리가 시간과의 여행 또는 존재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일이란 무엇이지! 난 일을 보며 나를 잊고 나를 태운다. 나를 되돌아 본다. 가끔씩 그래서 나를 되돌려 본다. 나로
    반응형
  • 링마이벨
    WaitingforGodot
    링마이벨
  • 전체
    오늘
    어제
    • 분류 전체보기 N
      • Culture N
      • Logos N
      • Module, Performance, Planni..
      • Advertising
        • Marketing
        • 플랫폼
        • OTT
        • 프로그램제작사
        • 컨텐츠
        • Non Commercial
        • IP
        • 방송관련법규
      • Money
        • Token
        • History
      • Entrance
      • ZOOM N
      • 플레이스
      • Psy N
        • 내 마음이...
        • 사람 사람들 N
  • 블로그 메뉴

    • 홈
    • 미디어로그
    • 태그
    • 방명록
    • About us
  • 링크

  • 공지사항

  • 인기 글

  • 태그

    광고
    코로나
    넷플릭스
    Ai
    어머니
    홍콩
    직장상담
    미디어
    시간
    메타버스
    대한민국
    디지털
    돈
    상담
    나
    OTT
    공간
    fast
    삶
    CTV
  • 최근 댓글

  • 최근 글

  • 250x250
  • hELLO· Designed By정상우.v4.10.3
링마이벨
진도항은 안다.
상단으로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