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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우린 왜 C급에 열광하는가?

by 링마이벨 202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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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열광할까? 대중문화라는 것이 싸보여서 일까?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중이 일상적으로 것도 매일 ‘casual’ 과 ‘daily’ 원칙에 얼마만큼 부합하냐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친숙함이 대중문화라 한다면 그 친숙한 미디어에 구현돼었든 “의식주“를 얼마나 matching의 문제인 것이다. 대중문화란 얼마나 그 배경을 바탕으로 녹여낸 꽃일것이다. 길거리 담벼락에 아무렇게나 큰 낙서가 문화가 돼고 나를 표현해낸 양식이 될것이다.

그러면 반대로 고급문화란 말은 대중성이 결여된 자체로 역설적으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칭하는지 모르지만 어느것 하나 제외될 수 있는것이 있을지 것도 의문이다. ㄱ
러면 왜 우리는 이 c급 문화에 매료돼는 것인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바로 자연스런 지저분함과 정돈돼지 않은 것이지 않을까?
미디어는 항상 정리와 정돈을 이야기 하고 있고 우리의 교욱이 항상 바름을 이야기 하는것에 지친 반대급부의 배출 역할을 하여서 이지 않을까? c급이라고 막대할 수 있는 것으로 치부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c급이라는 편안함 부분과 가벼운 부분 경시돼도 돼는 것이랑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건 c급 정신에 위배 돼는 것이다. 우리가 철저하게 c금이라 말할 구 있는 프로정신과는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c급은 소비돼어지는 방식이 아닌 공유의 측면이 강한 것이다.

c급에는 elevating이 아닌 다운 다운의 깊은 속성이 담겨져 있다. 끊임없이 침몰하는 커다란 닷을 온몸에 칭칭 감은 내면의 자아 말이다. 소리없는 침묵과 소리없는 아우성을 동시에 지닌 야누스적 감성을 가진 동전의 앞뒷면의 자아 말이다. 원하면 언제든지 뒤집고 스스로 엎을수 있는 운명을 가진 자아 말이다. 너무나 가벼워서 언제든 모로 누울 수 있는 자아말이다. 너무도 사소하고 너무나 가벼워 언제든 moving이 가능허고 언제든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고 심지어 없어질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말이다. 새로울 것도 넘 오래돼어 색깔이 변하는 벽지라도 이제는 방의 백열증과 하나가 되는 어색하지 않는 벽지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c급이 돼어 가는 것이다. 이제는 누구의 말이 누구의 치기어린 행동에 상처를 받을일 없고 상처를 더더욱 줄 없는 신분으로 말이다.

걍 날려도 좋은 이 방향 저 방향 갈대처럼…c급에게 정체성이란 있을수 없다. 왜냐하면, 정체성이란 고인물이기 때문에 고일새가 없기 때문이다. 뒤로는 푸른 하늘이 배경으로 있고 화면은 시시각각 바람부는대로 바뀌기 때문에 정체성이란 평가는 어울릴 수도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저 바람부는 대로 갈뿐이다. 소매가 됐든 깃이됐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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