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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

by 링마이벨 202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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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 밀그램의 익명으로 권위에 복종하여 실험자가 원하는 대로 따랐을 것 상대방을 대상화 해서가 아니라 권위자가 자기에게 가할지도 모를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므로 그 권위에 복종한다.

스탠리 밀그램은 1933년 뉴욕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헝가리인 아버지와 루마니아인 어머니의 아이로 태어났다.[2] 밀그램의 아버지, 사무엘은 빵집 주인으로 일하며 얼마 되지 않는 수입으로 1953년 사망할 때까지 가족을 부양하였다.(그 이후로 스탠리의 어머니, 아델이 빵집을 이어 받아 운영했다.) 밀그램은 성적도 우수하고 또래 사이에서도 뛰어난 리더였다. 1954년, 밀그램은 뉴욕 시립 대학 퀸즈 칼리지에서 수업료를 면제받으며 졸업하여 정치과학 학사학위를 받았다.[1] 그는 하버드 대학교 사회 심리학의 심리학 박사과정에 지원하였고, 처음에는 심리학 분야의 불충분한 사전학습 때문에 거절되었다.(그는 퀸즈 칼리지 재학 중에 하나의 심리학 학부 수업도 듣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1954년 하버드대에 하버드 특별학생처의 학생으로 입학하였다.[1] 1960년, 밀그램은 하버드대에서 사회심리학 분야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마도 그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밀그램 실험 때문에, 하버드대에서 조교수가 된 이후 교수직이 거절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종신 교수직을 제의했고, 밀그램은 이를 받아들였다.(Blass, 2004) 밀그램은 솔로몬 애쉬, 고든 올포트를 비롯하여 심리학계에 많은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3] 그 외에도 밀그램은 복종 연구를 도운 그의 첫 대학원 조수, 앨런 C. 엘름스를 비롯한 수 많은 심리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밀그램은 1984년 12월 20에 심장기능부전으로, 그가 태어난 뉴욕 시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아내는 알렉산드라 “사샤” 밀그램이고 두 아이가 있었다.[4]
인간이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아주 유전적으로나 기질적으로 잘못된 사람들이 아니고 일상의 사람들이 일상의 모든 사람들이 잔인해 질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올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치의 잔인한 홀로코스트 또는 그 잔인함의 가운데 있던 사람들 마저도 그러한 삶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이해가 돼지 않는 일일것이다. 만약 일본이 신사에 한국의 징병이던 한때 누군가의 나라에 지노사이드를 진행했던 사람이나 용맹했던 비행기 조정사, 전쟁영웅등을 신사에 배치하는 그들의 행동은 아무래도 많은 양면성을 가지고 잇는 것이다. 왜 신사에 왜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아무래도 민간신앙이고 생활신앙으로 그들이 선호했던 권위에 대한 그 권위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생활에 일상으로 천황을 모시고 있고 한편으로는 천황의 권위가 사무라이의 전통이 신사의 권위가 이러한 권위가 살아있기 때문에 일본이 존재하고 그 존재가 한때는 세상에 위협으로 자리잡았을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 권위를 살릴려고 일본의 정치가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권위는 한편으로는 나의 권위고 나의 권력에 대한 욕심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사무라이가 정치를 찬탈한 어떤 군사정권의 전형을 하나의 정당성으로 하다보니 아마도 많은 부분들이 거기에 연결해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확대되다 보니 아무래도 이러한 체계를 존속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역사의 긍정은 아무래도 일본이라는 시스템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보니 아무래도 끊임없는 부정의 부정을 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돌프 아이히만 이는 실제로 유태인들의 학살장소인 아우슈비츠로 모든 수송을 담당했던 바로 그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 전범을 전쟁후에 재판하는 장소에서 그 누구보다도 평범해 보였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 재판에 참석했던 그 누구보다도 더 평범한 일상의 이웃이었다는 기록이 많다. 그렇게 생활해서 일까? 일부로 조작된 것일까? 악은 얼마나 평범하고 기질이나 유전적으로 어떤 잔인함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 진행돼어야 하는데 평범한 이웃이 그런 싸이코패스의 역할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학문과 우리의 정서에 반했을지를 생각해 보면 당황했을 것이다. 우리의 잔인함은 도덕적이고 인류애를 포기한 사람들을 그 명령을 따르게 했던 것은 일상 누구나 가지고 있던 권위였다는 것이 거기에 복종할 따름이었다는 것이 실험과 다른 여러가지로 얼마나 머리아픈 일이었을까? 

우리가 애타게 일제강정기에 독립을 쟁취하려고 만주에서 블다디보스톡에서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할때 KBS1에서 밀정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돼었고 일본은 이때 밀정에게 진행하였던 모든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이 일본정부와 했던 이야기 많은 부분이 돈으로 집중돼 있었다. 활동비를 더 달라 활동비를 주고 정보를 받고 아마도 대한민구의 어두운 구석들을 우리에게 오픈하지 않은채 그들이 일본을 대상으로 했던 수없는 Dialogue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화는 아무래도 우리가 보통 알수있는 식민지 백성으로 할 수있는 그런류의 이야기가 아닐것이고 1930년대 말 일본의 강제통치가 그 끝을 달려갈때 모든 언론과 문화의 인사들이 일제강정기 통치와 협력하고 조력할때이니 그리고 활동하던 밀정이 숫자로 일만명을 넘어갔으니 그러나, 해외에서 국내에서 그렇다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분명히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분명히 많았을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3.1운동 그렇게 많은 여성 독립운동자들이 많았음을 해방돼고 중국에 북한에 여성 공산당이 많았음은 러시아에서도 인정한 공산당 운동가로서 여성이 남성이 많았음을 알게돼고 한편으로 국내에 그런 사람들을 앞질러 독립이 된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해방후 어떻게 남한으로 와서 이승만이 밑에서 살수가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이때 실제로 독립을 억누르고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았던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가 이제 하나둘 모두 죽고 사라지고 있다. 역사도 진실도 바로 정리돼지 않았는데 그들의 잔인성을 다룰 수 있었을까? 아주 심한 몇사람을 제외하고 나면 다른 사람은 관심조차 줄 수도 없는 형편이었지 않았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다. 나치는 그래도 과거사를 정리하며 독일, 프랑스는 2021년 12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그 역사에 대해 심판하고 있지만 우리는 사실 "내가 잘못했다."라는 한마디 없이 세상을 뜨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해방후 국내에 들어오고 나서 귀싸대기를 맞고 일본 고등계경찰한테 독립후에도 이러한 처사를 당했다고 하니 ? 이 눔의 나라가 지금 정상일 수 있었겠나? 그럴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 이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만약 권위가 살아있고 권위를 아마도 나는 기득권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득권 권위를 많이 누리려고 하는 민족일수록 그러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 있을 수록 그 나라의 평범한 구성원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많치 않을까? 최근에 전두환이 사망하면서 많은 사람들 그 권력에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그들이 가진 그 수많은 부와 권력 기득권들이 어디에서 발생했을까? 왜 그들은 그 명령에 따랐을까? 명령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또한 부와 권력이라는 열매를 생각했을 터고 그러한 권력이라는 과실을 생각해서 자기 민족 자기동포 자기이웃을 총칼로 찌르고 죽이고 몇십년을 침묵한채로 호의호식으로 삶을 마무리 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일상의 잔혹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분명 엄청난 범죄이고 아무리 정당하하려고 해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일것이다. 전두환은 아무래도 돈으로 모든것을 쳐발른것 같다. 그의 욕심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돈으로 모든것을 해결한 듯 하다. 안타깝지만 권력을 찬탈하고 박정희라는 최고의 권력자가 이루어놓은 그 수많은 악의 축을 연장한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민주화에 공들이고 목숨까지 바쳐서 이루어놓은 그 피눈물을 낼름 가져간 것이다. 그 잠깐의 공백을 동물적으로 캐치해 사실은 낼름 먹어버른 것이다. 사실은 국가와 국민에게 내려놓아야 할 그 시기를 본인의 과실로 가져간 것이다. 

사실 잔인함이란 어떻게 보면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그 판단을 본인들이 아전인수격으로 판단해 모든것을 자기것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잔인함은 평범한 이웃에 의해 행해지지만 사실은 권위가 살아있은 나라일 수록 기득권에 대한 욕심이 강할 수록 분명히 반대 급부의 잃어버리는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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