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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들

슬라브예 지첵

by 링마이벨 202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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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로서의 행복은 정말 많은 문제가 있는 개념입니다

목표로서의 행복은 목적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행복은 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이 질문의 답이 될듯하다. 목표로서의 행복을 취한다면 아마도 행복을 위한답시고 진정한 행복을 다 질식시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목적과 수단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될 듯하다. 행복은 궁긍적인 목표가 될 수 있지만 행복이 궁극의 도달점일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없는 착한 사람들은 착한 일을 나쁜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한다. 오직 종교적인 믿음만이 착한 사람들을 나쁜일을 하게 할 수 있다.

종교라는 것은 하나의 도덕적교리가 종교인데 아마도 종교를 믿고 신념을 형성하면서 그 플랫폼을 중시하게 되면서 아마도 교리보다는 하나의 독트린, 플랫폼, 배타적인 경계심만 가득해지면서 종교가 진정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하나의 주요인으로 변질 되는 것이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우를 범하지 않는 그 흘러넘친 편견들이 오히려 타인과의 갈등을 일으키고 거기에 따른 악의적 실행을 정당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무신론이 초래하는 도덕적 허무주의의 위험을 경고했었습니다. 만약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데올르기는 진정 사람을 맛이 가게 합니다. 

신이 만들어 놓은 그 무한한 질서와 정돈은 사실 인간을 위한 미필적 고의이고 나의 저녁 무도회를 빛내주는 어둠을 만드는 마스크 역할을 한다. 무신론은 어찌 보면 진정 누구도 믿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필요해!라는 강력한 암시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무신론자는 항상 종교 주변에서 서성이고 학교를 싫어한다지만 학교앞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를 책임지고 고통을 안고 가는 게 맞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고통받는다고 해서 당신의 삶에 진정성이 주어지진 않아요. 쾌락의 희생은 희생의 쾌락으로 쉽게 변질됩니다. 타자를 향해 자신의 친절함과 정체성을 과시하면서 정체성을 파는 사기꾼들입니다. 병적인 요소는, 그가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아내를 의심해야 한단 점이다. 

행복이 궁극적 목표가 되는 것이랑 비슷한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행복은 과정이고 그 상태이지 행복이 그 목표가 되면 행복하면 목표가 사라지는 문제도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지만 그렇게 잛지 않기에 목표는 한계상황이지만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재앙이 일어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종말론을 떠들어 대거나 저는 싸구려 낙관주의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오, 그래도 이 터널 끝에는 빛이 보이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 그건 다른 기차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투견처럼 싸우지말고 우리는 심각한 문제를 다루려고 애쓰는 겁니다. 

이말처럼 마음에 닿는 말은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가장 안좋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바닥패로 깔아놓고 지금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 합니다. 가장 어려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야 현재를 행복하게 느끼고 살 수 있기 때문은 아닌지! 아마도 변화에 대한 changeable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과 그 미래를 예견하기 보다는 현재라는 전체를 바닥으로 팽겨쳐 버리는 하나의 방어기제로서의 삶의 대한 자세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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