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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4

용서, 고백, Confession 청출어람 고백은 항상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고백은 과거의 현재 과거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역사적인 팩트 진실마저도 뛰어넘습니다. 그러나, 고백은 진실해야 합니다. 당사자는 그 기반이 없으면 우리는 것을 고백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고백은 이렇게 일방통행의 one-side 방식인 것이다. 우린 70년의 일제 강정기를 거치면서 왜곡과 비뚫어짐 왜곡 은닉의 역사적인 진실에 대해 뒤틀림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많은 살인과 약탈 배반 모략 밀정 고발과 고소거 난무하게 된다. 그것이 일본이 바라는 바였고 그들의 바램처럼 서로 물어뜯고 중상을 일상처럼 생활하였다고 생각한다. 대한 영토에서 만주에서 연해주에서 미국에서 상하이에서 하와이에서 존재하기 위해 살기위해 서로에게 온갖 위협을 한 것이다. 내 조.. 2020. 7. 15.
친일 친일 반일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삶을 선택하고 가족을 등지고 가족의 안위를 아들 딸의 비럭질 삶을 조국과 배치시킨것이다. 지금의 네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처절하고 벼랑끝에서 모든 나의 관계를 청산후 선택한 삶의 문제인것이다. 처절하고 너무나 냉정해서 가족이 친구가 부모가 그 결정안으로 들어올수 없는 인륜과 도덕 상식을 저버린 삶이었다. 그와중에 어떤 선택으로 부를 이룩하고 주지육림의 삶을 택했다면 지금에 와 건 강요였고 불가피 하였다고 이야기 한다면 것이 진쩌 불가피함으로 포장될 수 있는가? 해방후 단죄를 할 처지도 아니였고 한국도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일본 자체로 인식했던 ㄱ 일본에 영어랍시고 지 안위만을 위해 항변해야 할논이 식민지 이후 대통령의 자리만.. 2020. 7. 13.
참 염치도...최소한 이사진들이 뭔지부터 이야기 해주라! 간도특설대가 창립된 초기의 지휘부. (사진=서해문집 제공) ◈ 혼돈의 만주벌판…일본군, 조선청년 모아 독립군 토벌에 나서다조선인 청년들이 일본군이 준 무기를 들고 조선 독립군에게 총을 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소설 같은 장면이 1930~1940년대에 만주벌판에서 실제 펼쳐졌다. 1931년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은 중국인과 조선인으로 구성된 ‘동북항일연군’의 게릴라전에 휘말려 고전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중국 본토 침략 때문에 바빴고, 만주인을 주축으로 구성된 만주국 괴뢰군은 전투의지도 없고 군기도 엉망이었다. 이에 따라 만주의 대표적인 친일파인 간도성 성장 이범익 등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조선인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특수부대를 만들기로 했다. 1938년 12월 14일 만주국 기병대가 쓰던 밍웨거.. 2020. 7. 12.
토착왜구 토착왜구라는 말은 2019년에 시작한 말인데 어원을 찾아보면 아마도 강화도 조약이래로 1870년대로 일본과의 불평등 조약을 맺을때 이미 대한민국에 거주하던 왜구들을 일으키던 말로 서울대 전우용박사가 처음 쓰던 말인듯 하다. 토왜~~친일파 新친일파의 주류로 토왜라는 1910년 6월 22일 토왜천지라는 말이 있었음 묘하게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고 Sync율이 상당한 수준으로 보인다. 해방후에는 토왜라는 개념으로 1947년 토왜라는 개념으로 쓰였는데 토왜들 많다. 나는 이사진의 결론으로 이렇게 본다. 친일은 철저히 개인의 이득을 중요시 했고 그 이득을 누렸던 사람들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은 외롭고 마지막은 죽음으로 의롭고 외로웠던 것이었기 때문이지 어떤 논리와 거창한 이론이 아닌 외로움과 부에 연.. 2019.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