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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8

아버지 나는 5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사실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존재이고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란 더더욱 없다. 존재에 대해서 기억나는 일이 별로없다. Episode라 할것도 없고 하지만 희미한 기억하나로 안방에 붙었던 작은 방안에 우리는 윗방이라 불렀는데 거기서 아버지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불도 키지 않고 이불을 덮고 누워 계셨다. 오로지 내이름을 부르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하나이고 마지막기억이다. 아버지는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항상 아버지라는 이름은 가족이라는 가족역의 병에 아버지가 있었다라는 것을 기억하며 병으로 소환해내곤 한다. 내 어린시절 기억말이다. 아마도 그때의 아버지나이에 머물게 되면서 불현듯 아버지의 서늘한 기억들이 소름돋듯이 올라온다. 내아이에게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 .. 2021. 1. 4.
명품 난 소비를 좋아한다. 소비를 안해도 밝은 불빛, 깨끛한 복도, 유리알 처럼 빛나는 진열장, 흰 장갑을 낀 판매원, 난 왜 명품에 난 에르메스에 열광하나? 현실의 우울함 현실에 비참한 생각이 들때 그 복도를 걸어간다. 사지 않아도 이미 난 구매를 원하고 열망하니 난 성경의 비유에 의하면 "난 산거나 다름없다." " 난 이미 구매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명품이 명품의 가치를 지닌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옷이 구두가 핸드백이 그와 어울린다는 것은 중요하지않다. 원래는 누구나 다 어울린다고 구매하는 것이니까? 그 어울림의 이미지는 아마도 광고가 아니면, 우리가 대입한 인용이 우리가 인용한 허상이 나에게 투영되고 투영한다는 거짓 이미지로 품질이 좋다는 논리로 아니면 커머셜이라는 상.. 2021. 1. 4.
Lovisfree 우리에게 free란 어떤 의미일까? 책임이 따르는 자유라 억수로 교육계에선 이야기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free란 방종에 가깝다. 하고싶은 것을 하는 꼴리는 대로 하라고 하는 그 구속돼지 않고 억압당하지 않는 자유말이다. 나는 중3때부터 대학교를 자취를 하고 자랐다. 혼자 자고 혼자일어나 가방메고 학교에 가고 밥도 혼자먹고 심지어 밥을 만들어서 먹어야 하는 그런 삶말이다. 작은아버님댁에서 몇개월 같이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 지낸적도 있지만 줄곧 혼자 먹고 혼자자는 생활 말이다. 내가 자란 춘천 아마도 공공도서관이 있었던 약사리 고개에 자취방이 있었다. 작은 방안에 곤로, 비키니옷장, 연탄보일러가 있었다. 그땐 볼수있는 풍경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지금껏 살아있는 것도 용할 정도이다. 그때 그 방안에서.. 2021. 1. 3.
빠름의 미학 우리는 중국의 13.9억원의 중국과 비교해 54백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미국면적이 980만제곱킬로미터라면 우리는 10만제곱으로 미국 크기의 1/100에 해당한다.아마도 말을 기준으로 달리다 보면 작은나라에서는 하루에 절반을 달릴 수 있기 때문인지? 빨리 움직일수 있던 반면 중국이나 미국은 민족도 많지만 절반도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여유있고 느긋해지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차피 하루에 불가능하니까? 우리는 유난히도 민족적으로 '빨리빨리'를 이야기한다. 왜 우리는 빨리 빨리 할까? 기다리지 못해서 그러면 왜 기다리지 못했을까? 그 빠름이 반도체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네트워킹이라는 인프라를 누구보다도 빨리 서울이 빠른도시 정보도시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빠른걸 좋아해서 아니 어느순간 빨라진건.. 2021.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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