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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Place43

하회 양진당 유난히 물도 많고 물이 굽이쳐 흐르는 안동의 정서적인 느낌은 무어라 할 수있을까? 유난히 하회탈이 그 웃음과 해학 골계미를 가진 동네에서 희극적인 저 mask란 무엇인지? 그 억눌리고 양반사회에 눌린 일반서민의 삶을 그러한 mask를 통해 표현했다는 것은 어지간히 안동이 상당히 폐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동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동네에서 우리는 웃음과 해학을 표현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러한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 오히려 좀더 여유로운 삶을 향유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해학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지옥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어쩠거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를 통해 각기 병렬식 구조라 보아야 하나 각자 온돌방 마루방, 부엌을 가지고 각자 시종을 같이 거느린 상황이라고 보면된다.. 2018. 4. 1.
구례 운조루 구례에 이러한 집이 있었다니 그것도 대단하네... 영조 1776년 창건된 운조루의 예를 들면 78칸의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도 주택규모를 제한했음은 물론이고 운조루의 규모는 99칸 현재 남아있는 갰수는 73칸에 해당한다. 조선 중기의 집으로 영조 52년(1776)에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산과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금환락지(金環落地)’라 하는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집의 구성은 총 55칸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T자형으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에는 큰 부엌이 없는데 이곳에는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사랑채와 직각을 이룬 누마루가 있어 전체 살림을 한눈에.. 2018. 4. 1.
현충사 사당에 쓴 박정희 글씨 여러많은 시간동안 흘러 내려온 것을 우리는 관습이라든가 문화로 표현한다. 문화란 상당한 기간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하나의 시간의 표출형태라 본다. 만약 많은시간을 내려온 가짜라도 또는 오랜시간동안 누적된이라면 그 자체의 문화적 가치가 생기게 된다고 본다. 왜 그시절에 그것을 가짜로 대치 됐는지 그 가짜의 해석은 그 당시 박정희 권력의 극대화된 권력을 상상하고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일본강정기를 거치면서 광화문에 있었던 척식주식회사를 없앴것은 그 문화의 자산이 지금 우리의 정신적인 또는 생활문화적인 부분에 심오한 불편을 끼친다거나 또한 여러가지 치명적인 결점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매김 할 수 있어 보인다. 우리가 보는 이러한 정신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여러 상황들을 함축하고.. 2018. 2. 23.
남해 남해도 앵강만 남쪽 끝, 끝없이 열린 대양을 내다보고 들어앉은 양아리는 대량(큰양아)리·소량(작은양아)리·두모리(드므개)·벽련(벽작개·백련)리·노도리 등 다섯 마을을 거느렸다. 벽련마을 앞의 섬 노도는 벽련에 속해 행정단위론 4개 마을이다.• 남해 앵강만 이야기 앵강만이라는 이름은 꾀꼬리 앵(鶯) 자에 물 강(江) 자를 쓰고 있지만 어원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꾀꼬리가 많이 울어 눈물이 강을 이루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주변에 있는 곳골이 꾀꼬리의 순 우리말인 곳고리에서 유래되었지만 일제가 민족정기를 흐리기 위해 한자식으로 바꿨다는 설도 전합니다. 조선 중기 유학자 서포 김만중은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는 것에 반대해 일어난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해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유배지가 바로 남해의 .. 2017.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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