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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Fortuna & Virtus(인용구)

by 링마이벨 2017.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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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고대 로마에서 포르투나(Fortuna)는 행운의 여신이자 행운 그 자체를 의미했다. 그리고 본래 행운이란 계산과 통제가 불가능한 불확정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포르투나에는 또한 우연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포르투나의 복합적 의미는 그 어원을 살펴봤을 때 더 잘 드러난다. 어원적으로 봤을 때 라틴어

'fortuna'는 생겨나게 한다는 의미의 'ferre'를 어원으로 가진 명사 'fors'의 형용사형이다. 같은 행운의 여신인 그리스의 티케(Tyche)역시 ‘성공하다’, ‘성취하다’, 혹은 ‘잇따라 일어나다’(to succed), ‘달성하다’(to attain)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로마시대의 포르투나는 행운이라는 뜻과 함께 우연적 요소라는 의미도 포함된,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어떤 성취나 결과를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 걸맞게, 여신 포르투나의 상징물들은 번영을 부르는 풍요의 뿔피리,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향타, 그리고 운명의 부침을 의미하는 수레바퀴였다.

로마인들은 이 우연적이고 불확정적인 행운인 포르투나를 효과적이고 당당하게 다뤄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역량을 ‘비르투스'(virtus)라고 불렀다. 남성을 의미하는 비르(vir)에서 비롯된 이 단어에는,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남자다움’의 함의가 내포되어 있었다. 기실 비르투스는 적과 불행에 맞서는 용맹성, 현실적 문제를 중시하는 실질성, 삶에 대한 적극성등의 의미가 포함된, 건국 초기 로마의 정치 군사적 지배계급의 에토스(ethos)였다(Pocock 2011, 97). 또한 이후에는 제국으로의 성장을 가능케 한 군사·정치적 역량의 총체(주1) 즉 로마의 힘과 역량을 의미하게 되었다(김경희 2004, 232). 따라서 로마인들에게 비르투스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와 대비되어 예측 불가능한 삶에서의 성공을 담보하는 ‘남성적’ 자질로 여겨졌다. 행운의 여신은 때로는 영광을, 때로는 몰락을 가져오는 다소 변덕스러운 존재이지만, 인간은 비르투스를 갖춤으로써 그런 변덕에 일정 정도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비르투스는 그리스 문물의 본격적인 도입과 함께 유사한 그리스 단어였던 아레테(arete)와 의미상의 변화를 공유하게 됐다. 흔히 ‘덕’ 혹은 ‘사람됨’으로 번역되는 아레테는 본래 모든 사물이 특유의 기능과 구실을 충족하여 이를 수 있는 훌륭하고 좋은 상태를 의미했다. 그러나 도시국가의 시민이라는 정치적 맥락과 관련되어, 이 개념은 ‘시민적 탁월성’ 즉 다른 시민들에 의해 존경받고 그들에 대한 권위를 가지는 어떤 품성이란 의미를 갖고 있었으며, 또한 플라톤 철학의 영향에 따라 훌륭한 삶을 완성하는 윤리적 기초라는 의미도 갖고 있었다. 의미와 쓰임새가 거의 흡사한 단어인 아레테는 비르투스에 복합적 의미를 더해주었다. 이제 비르투스는 아레테와 똑같이 정치적, 윤리적 의미를 가진 개념이 되었다. 그것은 어떤 요소가 가진 특유의 능력 혹은 기능, 정치적 맥락에서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역량, 그리고 인간을 완성시키는 윤리적 선을 의미했다.
이러한 지적 토대 위에서, 로마 사상가들은 저마다 포르투나의 변덕에 대비하기 위한 비르투스의 목록을 작성했다.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의 저술들은 정치적이면서 또한 윤리적인 비르투스의 개념을 잘 드러낸다. <투스쿨룸의 대화>(Tusculanae Disputationes)에서 키케로는 비르투스는 남자다운 남자(vir virtutis)가 되기 위해 갖춰야할 필수적인 자질이며, 따라서 교육의 목적은 비르투스를 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남자다운 남자’는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와 자제력,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철학적 지혜, 그리고 지혜를 활용할 줄 아는 재주를 갖춘 존재였다. 특히 마지막의 재주 때문에, 키케로는 수사학을 매우 중시했다. 키케로는 비르투스와 포르투나의 문제를 또 다른 저서인 <의무론>(De Officiis)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뤘다. 여기서 그는 진정한 남성이 갖춰야 할 것으로 절제, 용기, 지혜, 정의의 기본적인 네 가지 비르투스와 정직, 관대함, 관후함이라는 추가적인 비르투스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비르투스를 분류한 뒤 키케로는 운명의 여신의 변덕과 그 대응책의 문제를 논한다. 그는 행운의 여신이 우리에게 미소를 지을 때라도 결코 자만해선 안되며, 인간사의 허망함과 행운의 여신의 변덕을 잊어도 안된다고 충고한다. 나아가 그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않으며,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도덕적으로 선한 동시에 유익하기도 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여신의 은총을 사기 위해서는, 즉 영광스럽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의무론>에서 키케로가 펼치는 핵심적 주장이다. 도덕적인 것만이 유익하고, 도덕적인 방법만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포르투나로 대표되는 인간사의 불확정성은 정의, 정직, 관대함 등의 윤리적 행위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는 견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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