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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nalist 기자

by 링마이벨 2019.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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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기자는 아마 지금까지도 기자는 선망 받는 직업중의 하나였다. 기자는 역사적인 소명의식과 미래 vision을 가진 오히려 Doctor에 유사한 의미로 쓰인것 같다. 해박함을 가지고 있고 날카롭고 거기에 논리적인 사고를 토대로 하는 말 그대로 좋은 말은 다 붙여도 상관이 없는 그러한 직업이었다. 현재 우리의 기자들이 일선에서 비판 받는 이유는 그럼 어디서 오는 것일까? 미안하지만 나는 저널리즘을 공부한 이도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만의 시각으로 나만의 생각을 전해본다. 

첫째, 직업적인 기자인 것 같다. professional(검사를 칭하는 것은 절대아님)이 아닌 job으로서 한 부류의 직업인으로 변화된 것이다. 여기서 professional이라는 의미는 직업적인 소명의식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과 다른 것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직업의식이 직업으로서의 기자가 어떤 소명으로서의 또는 사명감이 아닌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그 명분에 치중함으로서 모든 사실을 팩트로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저항정신이 없는 것이다. 일단 진실에 대한 저항과 시대에 대한 저항의식이 원래 많이 없었는데 이제는 소멸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저항정신이 없으므로 나에 대한 존중과 시대에 역사에 대한 존경이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은 저항하지 않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나에게로의 회귀하는 것이야 말로 이러한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기자라는 우월의식으로 이러한 우월의식이라는 부분과 애초에 기자라는 부분이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시작부터 어쩌면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부담을 준 부분이 그들에게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자리잡게 했던 것 같다. 역사의식도 없을 수 있고 삶에 대한 강력한 요인이 애초에 없던 그냥 열심히 외우고 남들보다 공부 잘한죄로 그들에게 부여됐던 ticket을 잡은 것 뿐일텐데 말이다. 

넷째, 환상속에 그대가 있다. 라는 서태지의 노래 가사처럼 환상속에 있다가 처음으로 그들만으로 무리를 지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을 들여다 보니 많은 후회와 자책 한숨만 나올 뿐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는 것보다도 더 적고 더 미지근하며 그냥 조중동안의 경향의 아니면 kbs, mbc, sbs의 울타리에 있는 회사의 방침을 어기지 않는 그냥 지금껏 그렇게 살아온 모범답안속에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기대도 없다. 그들에게 부담을 줄 이유도 없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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