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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말고삐

by 링마이벨 2020.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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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삐를 잡고 가는 길 말고삐를 잡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말고삐를 잡는다는 것은 내가 주인이 돼는 것이다. 내 자신에게 진실하다는 것 내 자신에게 스스로 부지런하다는 것은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내가 주도적으로 말이 더 달리게 할 수도 있는가 하면 속도를 줄이고 지금까지의 진행을 멈출수도 있는 것이다. 말머리를 돌린다는 말은 말이 교통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그때의 비유였을 것이고 말에게는 가장 아프고 아주 예민한 얼굴뼈와 턱뼈를 관통해 고통을 주어 말의 시선을 바꾸어 방향을 바꾸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말을 타고 갈때 마이동풍馬耳東風 이라든가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든가 주마가편(走馬加鞭) 대개의 3개의 속담으로 해석해 볼때 말등에 탔을때는 "잘듣지 않거나, 대충본다거나, 재촉"이러한 의미로 몇개의 메타포를 가진 의미로 사용되었다. 

어찌보면 말과 사람은 애초에 같은 방향을 보고 달리지만 서로의 의도가 부합하지는 않아 보인다. 내가 오늘은 택시에 앉아서 버스를 바라볼때 버스는 난폭운전에 양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버스에 앉았을때는 택시들 운전이 넘 거칠고 얄밉게 느껴지는 것과 똑같아 보인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공유하게 된다면 말과 사람은 하나로 인식돼어질 수 있다. 시간이라는 가치는 말위에 앉은 사람도 땅을 디딘 말과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시간의 가치, 지속의 가치라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공유와 감정이입을 하게 돼는 것이다. 내가 말이 될 수는 없지만 말을 가장 아끼고 잘 관리하는 사람이 전투에 가장 공훈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말의 상태를 알고 말을 휴식해야 하는 때를 일할때와 쉴때를 가장 명확히 판단하는 사람의 몫이었던 것이다. 

산업사회 speed는 결국 모든 것을 원점으로 만들것이다. 인간이 쌓은 거대한 문명이라는 업적도 인류가 쌓아놓은 커다란 인문학적 예술적 위대함도 한줌의 모래로 만들어버리게 될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TIME이라는 장치도 그 많은 기계문명도 속도를 느끼는 인간이 더욱더 빨라지고 그 학습화로 말미암아 더더욱 속도의 노예로 전락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허물어트릴 것이다. 아마도 2G 3G 4G 5G가 과거 플랫폼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회피할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유산을 인정할 수 없고 현실에서 Now를 제외한 모든 과거는 소리없이 소멸할 것이다. 인간들 스스로 못참아 하고 인내가 사라진 사어가 될 것이고 문명이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더욱더 빨리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블랙홀처럼...

아마도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면 인간은 부처가 될 수 있을듯 하다. 인간이 부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공감의식일 것이다. 명상한다면 나도 오랫동안 생각하고 번뇌하는 어떤 한 인간이 대중을 구원한다는 믿음처럼 몇날 몇일을 뛰기만 했던 톰행크처럼 뛰고 또 뛰고 걷고 또 걷고 그 반복과 루틴을 이길 수 있는 사람만이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탈을 원했던 사람 큰 바위얼굴처럼 내가 닮고 싶은 그 누군가를 닮아간다는 것,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를 보고 나이가들어 가장 자연스럽게 한 아버지가 돼고 남편이 돼고 그러한 과업들을 해나가는 것이다. 어머니의 아들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의 아들에서 한 아버지로 속도는 우리에게 더욱더 뭔가 중요한 것들을 지나치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전해준다. 빠른만큼 진정한 깨달음을 반비례함을 알 수있다. 소중한것은 항상 시간을 더 요구한다. 더 깊고 더 길고 더 높고 더 더더 그만큼 더 큰 무엇을 요구한다. 더무나 돌아갈 수 있고 한참 시간이 흐른후 우리가 깨닫는 것들이 내게는 너무나도 많았던 것 같다. 결국 속도는 과거 선배들이 이야기한것처럼 가벼움과 희생 한때의 가벼운 바람을 지양한다. 눈에 쉽게 띄는 것은 아마도 쉽게 기억속에서 관계속에서 소멸돼어질 수 있다.

 

나는 너무 말에 의존했던 것은 아닐까?

 

그냥 스쳐 지나가는 너무도 빨리 귀찮은것, 거추장스러움, 불편한것을 한번에 지나쳐 가장 편한상태로 아니면 가장 쉽게 지름길로 가려 했던 것은 아닐까? 익숙함으로 또는 안락함으로 나는 현재에서 현재로 이동하고 어디론가 가면서 지금이 사라져 버린다. 나는 너무도 익숙하고 안락하고 따뜻함만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달리면서 바쁘면서 나를 잊고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생소함이 싫어서 나를 잃어버리고 내 앞의 사람만을 보며 앞만보며 달려왔던 것이다. 내가 가진 고유한 주체적인 나를 잃어버리고 남들이 바라는 나,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지는 나를 만들며 그 허상을 향해 뛰어 달려왔던 것이다. 말에 넘 의존해 왔다. 표현하지 않고서는 진실하지 없다고 나의 정당성을 위해 합리적 나를 위해 지속적으로 빠지는 모래성을 쌓기 위해 내 자신을 너무나 소모해 왔었던 것 같다. 아직도 모래위에 누각을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해야 할지 모른다. 이 끝없는 작업은 지금도 지속될 수도 있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내 무의식과 나의 몰입을 통해서 현실을 잊고 무언가로 빠져드는 거대한 think Hole말이다. 그 사상의 바벨탑에서 나는 어떤 말과 동행해서 앞으로 나아갈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한번간 말머리는 돌리기도 어렵겠지만 빠른속도로 모든것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길 수 없는 그 본능이란 힘앞에 가끔 순간과 찰나의 그 거대한 본능을 이길 수 없다.  그 거대한 파도앞에 인간이 얼마나 내가 얼마나 나약해 지는지를 그 잛음에 안타까울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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