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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1

단청 주택의 장식은 신분에 따른 제한이 있었고 심지어 죄로 다스리어 곤장 80대로 다루었다하니 얼마나 큰 범죄로 인식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궁중이 아닌 민가에서 약과를 먹으면 곤장 80대였다 하니 같은 곤장수를 맞은것 이라 하니 80대 마이 아팠을텐데 어쩌면 사치한 죄를 묻고 궁중의 문화적인 법도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용적인 측면으로는 벌레가 먹지않게 하고 소나무의 균열을 감추기 위해서, 안료는 원래 진채 또는 암채라 광물질 색감을 사용하였다. 단청은 오행설에 근거해서 오방색인 청적황백흑을 사용하였다. 삼국, 신라, 고려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조선시대 이전까지 남아있는 건물이 없어서 그 흔적을 보기란 쉽지않다. 오로지 단청은 조선때 나름대로 하나의 문화로 아예 자리를 잡았던것 같다. 궁중도.. 2018. 4. 1.
구례 운조루 구례에 이러한 집이 있었다니 그것도 대단하네... 영조 1776년 창건된 운조루의 예를 들면 78칸의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도 주택규모를 제한했음은 물론이고 운조루의 규모는 99칸 현재 남아있는 갰수는 73칸에 해당한다. 조선 중기의 집으로 영조 52년(1776)에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산과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금환락지(金環落地)’라 하는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집의 구성은 총 55칸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T자형으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에는 큰 부엌이 없는데 이곳에는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사랑채와 직각을 이룬 누마루가 있어 전체 살림을 한눈에.. 2018. 4. 1.
장례 늙은 부모가 계실경우 지관을 불러 명당을 잡게 하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라서 대체로 남향의 건조지가 선택된다. 명당자리가 나오면 부모가 돌아가신 후 매장할 광중을 미리 파놓기도 하는데 광중[壙中]메구덩이 광 이는 상을 당하고 난후 번잡스러움을 피하기 위함 부모의 수의는 수의[壽衣]목숨수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 윤달에 준비하는데 이는 부모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상례는 만약 병이들어 위중해 지면 안방으로 옮겨 그곳에서 생을 마치게 했고 숨이 끊어지면 햇솜으로 입과 코를 막았으며 밖에서는 조용히 임종을 하였고 부모의 임종을 못하는 것을 가장 큰 불효로 여겼다. 부모가 숨을 거두면 밖에서는 망자가 입던 윗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영혼을 부르는 고복1 [皐復]부를복 초상이 나면 망자를 모신방에는 가구를 .. 2018.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