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onder Place

구례 운조루

by 링마이벨 2018. 4. 1.
반응형

구례운조루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구례운조루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구례에 이러한 집이 있었다니 그것도 대단하네... 영조 1776년 창건된 운조루의 예를 들면 78칸의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도 주택규모를 제한했음은 물론이고 운조루의 규모는 99칸 현재 남아있는 갰수는 73칸에 해당한다. 

구례운조루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조선 중기의 집으로 영조 52년(1776)에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산과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금환락지(金環落地)’라 하는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집의 구성은 총 55칸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T자형으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에는 큰 부엌이 없는데 이곳에는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사랑채와 직각을 이룬 누마루가 있어 전체 살림을 한눈에 관찰하도록 되어있어 특이하다.

안채는 사랑채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로 사랑채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며 평면이 트인 'ㅁ'자형이다. 중심부분은 대청이며, 좌우로는 큰방과 작은방이 자리잡고 있다. 행랑채는 '一'자형으로 2칸이 앞쪽으로 튀어나와 누형식을 취하고 있다. 1칸은 방이고 다른 1칸은 다락으로 되어있다. 누각아래 기둥 서쪽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층계로 하지 않고 경사진 길로 만들어 특이하다.

사당은 안채 동북쪽에 있는 건물로 따로 담장을 둘렀으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운조루는 조선시대 양반집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건물로 호남지방에서는 보기드문 예이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살림살이와 청주성의 지도, 그리고 상당산성의 지도 등의 유물도 상당수 보존되어 있다.

성종때 자식들을 위해 궁에서 솔선을 보이지 않고 100칸이나 넘는 집을 지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돼지 않는다. 그 당시만도 상식적이지 않는데 임금이 앞장서지를 않았다 하니 할말이 없네.. ㅠㅠ 집이 어떤 구조적인 무분으로 잘 지어졌는지가 아닌 방의 칸을 99칸 70칸 40칸 언감생심 백성들은 꿈도 꾸어보지 못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인것이다. 임금이 정실과 소실의 자녀를 사랑의 깊이로 방칸수를 이야기 했던 것 같다. 지금이나 그때나 부동산의 공적개념이 없었고 그 선두에 왕실과 관리들이 앞장섰던 것 같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