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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by 링마이벨 2020.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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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전염병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전염병의 속도, 사회적 안전망 하루에도 몇번씩 각 나라를 비교해보면서 전염자의 숫자를 보면서 이야기한다. pandermic의 전염원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입에서 입으로 입에서 코로 손에서 물건으로 물건에서 다시 손으로 손에서 얼굴로 코와 입으로 전염돼어지는 것이다.  전염이 이렇게 넓고 광범위하게 확산돼는 것을 본다. 

전통적 미적 가치 기준인 얼굴에 대해서 손이 얼마나 얼굴부위로 가는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심각하게 깨달아 본적이 없다. 또한 사람간의 전파속도가 중세유럽에서 보았던 페스트의 속도보다 얼마나 빨리 1대 다수로 옮겨가는지에 대한 연구나 조사도 없다. 또한 SOCIAL 인구 집중도가 어느 시대보다도 오히려 종교적인 조직에서 더 빨리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주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서 안전함 그 안전한 사회에 대한 평가가 넓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토록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서 경고를 주는 것은 중세이후에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사회가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그 통치자가 전체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간에 국민들이 부자든 거지든간에 그 사회가 안고있는 사회적 실체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어찌보면 국가는 세계적인 시스템의 평가가 World-wide하게 평가되고 있고 통치자의 통치수준도 전세계 평가돼어지고 숫자화 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신뢰도나 일본에 대한 치밀함이 다 거짓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빈민가나 뉴욕의 빈민가 대한민국의 빈민가 이 빈민가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대응을 했는지 그 국민이 처절하게 마스크 한장이 없어서 아니면 산소호흡기가 존재하지 않아서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하나도 가지지 않아서 죽는다면 만약에 미국에 태어나서 살고 특정한 나라에 태어나서 살 수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이유일지 모른다. 

확실히 위기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목숨일 수도 있고 잃어버리고 나서 우리는 대비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바람직한 계획을 바람직한 구도를 상상하게 된다. 어찌보면 우리의 기회는 철저하게 목숨이나 어떤 가치를 잃고 나서야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나 가치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the rich, the poor하든 우리는 모든것을 가지지 못한것 시스템이 통제못하는 변인 그 평가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것도 제대로 바라 볼 수 없는 것이다. 빈부라는 격차는 어찌보면 가장 처절하고 가장 비참한 비극의 원인이 될 수있고 어찌보면 국가도 한 가정처럼 위험에 대한 대비, 위협에 대해서 가장 처절하고 가장 빈약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비슷하다고 볼 수있다. 

또한 이렇게 언론의 반응도 fact를 이야기하고 대안을 이야기하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가장 밑바닥 수준의 언론의식을 보여주는 것도 볼 수있다. 바람직하지 않은 언론의 태도는 문제만 만들고 어떤 대안도 주지않는 대한민국의 언론이다. 대한언론은 영화가 나오는 대한뉴스 수준의 뉴스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딱 이수준의 뉴스라고 생각한다. 어떤 fact도 없고 국민을 위한 배려도 없고 국민에게 정보를 주지도 않고 불평만 하는 짜증만 내는 1차적인 언론 수준이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우리모두 그러한 국가 수준인 것이다. 사회주의를 욕하지만 더 욕해야 할 것은 민주적인 언론상황에서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마치 일제강정기 뉴스 보도처럼 한가지에 얽매여 언론사주와 돈이라는 것에 대해서 모든 방향을 설정하는 안타까운 뉴스라 생각한다. 

국가는 죽을 뚱 말 뚱 살기위해 발버둥치는데 관료는 자기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국민이 길거리에서 병상에서 죽든 그 어떤 가치에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의 삶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한 것에 가장 일선에서 일조하는 언론의 행태는 언론사주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사주의 부를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고 집중하는 일밖에는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민주주의가 만약 중세 광장에서 다양한 언로를 대변하고 그 다양성을 중시했던 중세에도 못 미치고 그저 사주의 이익 사주 가족의 안위만을 대변하는 보도로 전향한 것은 실로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이러한 언론 특히 신문의 이것도 콘텐츠라고 미디어 콘텐츠를 다양한 뉴스캐스팅으로 네이버, 다음, 구글등이 무작정 포스팅을 하다보니 그것을 읽는 포털의 영향력을 그대로 문화적으로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흡수, 포용성이 결국은 우리사회의 한가지 트렌드를 대변하고 그 트렌드는 철저하게 잘못된 언론관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 그 잘못됨이 국가의 정책과 영향력으로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이러한 언론이 마치 정론인것처럼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한 포털의 규제가 하루 라도 시급하게 정책에 반영돼어야 한다. 이러한 잘못된 포스팅의 반복이 이러한 구습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서 문제시 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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