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사람들

지젝

by 링마이벨 2019. 6. 26.
반응형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사유하느냐? 에 대한 문제 사유불가능한 것을 사유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요약하면 사이라는 부분을 공간적으로 이야기 하고 라깡과 헤겔의 사이를 "-"하이픈은 틈이라는 입장으로 대변된다. 연결이자 분리이고 opposition은 사이가 없어야 하는데 차이가 아니라 분할 division을 의미한다. 차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불가능은 동시에 곧 가능해지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계생산체감의 법칙이 정학했음을 알수있습니다. 중산층 계급의 중요성, 노동자계급, 지식인계급의 모호한 역할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헤겔은 실천할때 비로서 당신의 자신이 발견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에서 미래를 위한 진정성이란게 있나여! 집단이 한집단에서 다른집단으로 변했을 뿐 조던피터슨과의 논쟁은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급진적 사회변화가 중요이유가 아니었다는 것 그것은 좋은 것으로 위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회변화를 원한다는 것 작은 저항이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지젝은 아무래도 대립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화를 메인으로 원하는 것 같습니다. 행복,공산주의, 자본주의 중국의 사례는 가장 거대한 경제적 성공의 사례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 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다수의 행복을 근거로 하고 있다. 삶의 목적으로서 행복이란 중요한 역할을 하고 행복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그들의 욕망의 결과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없는 무능함 또는 게으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목적이기보다는 노력의 결과로서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권력자에게 우리에게 목표와 과제를 달라고 부탁할 수 없습니다. 무거운 짐은 자유 그자체입니다. 값싼 변명도 안되고 의무 그 자체가 변명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대의를 위한 수단일뿐 존재가 아닙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대의를 위한 수단이라 음 외설과 전통적 가치가 있으므로 트럼프와 샌더스는 촌스럽습니다. 신의 존재와 그러한 믿음도 실질적으로 우리에게는 도움이 돼지 않는다. 우리는 짐을 짊어져야 하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겪는 고통이 당신의 진정성을 증명한다고 생각치 마세요! 깊이있는 진실은 자기의 아내가 다른남자와 자고 다닌 다는 질투심 가득한 남편의 주장이 사실일지라도 그남자의 질투심은 여전히 병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남편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질투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설령 유대인들이 독일인들을 착취할 지라도 독일의 소녀들을 현혹시키고 나치의 이런 주장이 사실일지라도 그들의 반 유대주의주의는 여전히 병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니치가 왜 반유대주의가 필요로 했는지에 대한 진정한 이유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외부의 침입자에게 투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불충분 합니다. 우리가 무슨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이데올르기입니다.근본적인 거짓말 이야기죠!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