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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을 광고 모델로 이용하는 나라

by 링마이벨 2021.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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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을 광고 모델로 인용하는 나라의 문화를 살펴보면 제품과 모델사이 거리감으로 유명인 친숙함은 바로 신뢰와 호감을 주기 위해서다. 친숙함이 곧 생존이었던 시기를 거친 것이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 난 나의 주머니에서 내 우선순위 내가 사야하는 또는 필요함 우선순위중에 지출을 할때 그 wallet 구매순서에 있다는 것은 가끔 나의 생계비를 일정 뒤로 밀어서 그 순위를 앞쪽으로 당기는 것이다. 이러한 순위를 앞으로 당기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랑 가장 친한 어쩌면 지금 Digital에서 나와 가장 친한 avata또는 내 삶의 조언자인것이다. 나랑 가상세계에서 친밀을 가지고 있는 사람 당연히 outdoor에서 파티를 하거나 나와 지금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보다는 아무래도 그런 social relationship이 절대적으로 적은 그 경험이 부족할수록 TV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상의 친구들이 권해주는 구매행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로 유명인은 미국이나 유럽의 그 선호가 내 경제적인 행동을 유도할 만큼 직접적인 관계의 신뢰도는 냉정한데 우리 일본이나 한국은 그런 지인챤스에 약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광고 표현물들은 대개 그 지인챤스와 권위를 중시한다. 우리가 매스컴에서 보는 권력의 계층분위를 볼때 정치, 교수, 의사, 법조, 기자등 사회에서 가장 많은 지적 카르텔이 유지하는 이유이다. 그들이 물건을 파는 기업과 카르텔을 연장하는 이유는 바로 그 연결도리가 돈이 풍부한 유동성 고리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병원만큼 지인챤스가 중요한 카테고리가 있을까? 생명이 일각을 다툴때 종합병원이 3개월 기다리라고 할때 의사나 간호사 마저도 나의 프리미엄에 혜택을 줄 수 있으므로 병원앞에 영주가계거 지금 이 상황에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물며 법은 분쟁이 일어났을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때 법은 얼마나 많은 기득권의 편익을 제공해 줄 수 있었는지를 쉽게 상상 해볼수있다.
교수들만큼 사상적으로 카르텔을 지닌 사람들이 있을까? 언론은 어떻고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거기에 따른 부산물을 지키키 위해 아니 ‘제밥에 더 관심이 많진 않을까?’ 항상 본질보다 부산물이 더 크고 지식보다는 지식이 가져다 준 찌꺼기 그 부속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모든 이치가 그리로 통한다. 사적인 영역 그렇다보니 이러한 부류의 나라 즉 일본, 한국은 유명인 모델을 아직까지도 선호하는 광고 형태의 하나로 사용돼어지는 것이다. 이 와중에 전쟁도 많았고 이민족의 침략 독특한 무사도문화 무인이 정치의 주류가 돼어 문화정치를 하다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까! 아니 무사가 정치를 하고 무사가 글을 쓰고 무사가 예술을 헀으니 초기 육사가 모든 정치의 구심점이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낯선타인이 주는 공포는 아마도 생사의 갈림길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선택이란 매번 강요돼어져 왔을꺼고 그 삶에서 낯선사람은 곧 죽음 또는 곤란함을 상징했다. 이때 누구를 안다는 것, 친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학습돼어져 왔던 것 같다.
우리의 문화는 일이년 학습이 아닌 수십년의 수백 수천의 그 경험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그게 부지불식 뼈석까지 학습이 돼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안전망은 약해 언제든지 단칼에 사라질 수 있고 전쟁을 겪으면서 누군가를 지지하다 죽임을 맞은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내 선택보다는 나를 죽이고 살릴수 있는 사람의 의지가 그가 더 중요한 삶의 요소였기 때문에 자기 삶보다 리더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나라의 삶이고 그에 맞춰온 인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삶에서 아무것도 아무 정보도 없는 조건이라면 내가 친숙하고 그가 권위까지 있다면 그를 믿는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 문화적 요인은 조금은 폐쇄돼거 권력이 모든것을 차지하고 자유와 인권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나라들의 불편한 문화적 소산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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