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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by 링마이벨 201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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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욕망을 예측할때 가장 문제가 되는것이 태과 불급 개위질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이다. 넘쳐도 부족해도 병이 된다는 뜻으로 조화를 강조하며 지나침을 경계하는 이야기인데 사실은 중도부분에 대한 미덕이 포함돼어 있는 것이다. 문명이라는 부분이 시대를 거치면서 가장 그 때에 맞는 이야기를 선과악으로 분리를 하는데 그 선과악이 분리하는 것은 존재 재 하지 않는다. 진리안에는 엄청난 폭력이 존재한다. 그 폭력안에 수많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그 선악에 갇혀서 많은 폐해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부분이 변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잣대를 볼때도 

우리의 삶의 질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욕망이 방향을 잃어버린것이다. 욕망은 타자를 만나 해소를 하는 것인데 욕망과 접속이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상대방이 없이도 내 성욕을 배설하는 것이 목적이다. 결국 자본주의 첨단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포르노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결국 포르노는 크게 story-telling이 필요없는 것이다. 스토리 텔링이 없는 연애는 중간과정이 없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자기가 할말을 하는 그러한 외부의 상황이나 이해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사실 capitalism이라는 부분은 철저하게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물질이 이제는 삶을 사는 원동력이 돼고 있는 것이다. 자유가 없이 물질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보람찬 일이 없는 것이다. 힘을 가지는 것과 힘을 가진자는 잉여의 힘을 물리적인 폭력을 위한 원동력으롤 쓰고 있는 것이다. 잉여의 힘이라는 부분은 정당한 과업을 위해 힘을 써야 하는데 물리적인 힘이 기술의 힘으로 말미암아 뇌를 덜 쓰고 힘을 덜 쓰다 보니 우리는 많은 잉여를 생산하게 된다. 음식도 칼로리가 소화돼지 못할 정도의 많은 칼로리를 축척하고 쌓고 여러가지 활성화가 안돼다 보니 잉여의 힘이 다른 용도의 다른 삶의 활력으로 쓰여야 하는데 소멸되고 있다. 욕망에 대하여 질문하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본질에 대하여 상대적인 힘이 가동하는 것이다. 안달복달해보이지만 구심력이 없이 아무것도 아무리 많이 먹었는데 배가 부르지 않고 계속 다니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먹어야 하지?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지? 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방향성이 없는 것일까? 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쾌락은 정신을 많이 쓰게 한다. 기진맥진이 오고 성공을 하게 되면 걱정이 된다. 공연이 끝난 환호성의 뒤에서 얼마나 힘든 일일까? 성공해서 충분하다는 말이 있을까? 반복이라는 것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지속해서 이러한 과정이 반복돼다 보면 우울해 지게 된다. 그러나, 우울함이 얼마나 어떻게 소화될지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라 하면 저절로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다. 중년이 돼면 우울해지는 것이다. 우울증이 나오는 호르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리듬에서 지나치게 쓰는 것은 마음과 몸을 노쇄하게 하는 것이다. 배신감을 느낄 수 있지만 마음과 몸을 일치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재산을 어떻게 잘 쓸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핍을 느낄 수 있고 결핍을 지속하다 보면 우리는 결핍에서 내가 조율할 수 없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부분에 대해 ALL-IN하는 것이 많은 결핍이 생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결핍을 느끼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시작이라고 본다. 

방향성을 가지 못하면 이 방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소유에 대한 방향을 버릴 수 없다. 존재하는 것만을 느끼는 것만이 내가 살아가는 왕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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