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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

by 링마이벨 2020.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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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이처럼 왜곡돼고 과장된 사람이 있을까? 국어책 역사책에서 어디서든 만나볼 수 밖에 없는 위인인데 겉과속이 이렇듯 불일치 되는 사람이 있을까? 정여립의 난을 조사 담당하는 지금의 검찰 역할을 했네! 사건을 아마도 정치적으로 해석해 동인과 그 가족들을 죽음에 이르게 사건을 조작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 문인이라고 여러가지 시문집 내고 정치를 하기도 했으니 대단한 능력자 이신듯 또한 한때는 알콜중독자로 시조문학의 대가 였다고도 하니 참으로 관찰대상이다. 고문관이라 하기에는 문학과 정치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것 같다. 유배지 담양군 창평으로 가족이 이주해 이이, 성혼, 고경면등과 동문 수학했다. 성균관전적 겸 지제교를 거쳐 사헌부지평에 임명됐다. 이어 좌랑·현감·도사를 지내다가 1566년(명종 21) 31세에 정랑·직강·헌납을 거쳐 지평이 됐다. 그 뒤 함경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32세 때인 1567년(명종 32년) 이이와 함께 호당(湖堂)에 선발되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인연이 줄줄이 연결돼 있네! 직설적이고 술을 많이 먹는 성격으로 평상시 주위네 적을 만드는 성격이고 이이가 술을 끊으라고 한것을 보면 어지간히 술을 많이 한듯하다. 강원도 관찰사 시절 관동별곡과 기주실의'(嗜酒失儀)하고 '강편기극지인'(剛偏忌克之人)이라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거듭된 비판이 있었으나 임금의 총애로 무마되었다. 임금이 엄청 아껴줬구나!

술 자리는 참으로 여러가지를 생각나게 한다. 왕의 권세를 업고 주위 모든 사람들을 상처내고 죽이고 모함하고 말년에 넘 못된딕을 많이 한듯 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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