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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마니교 & 영지주의

by 링마이벨 2017.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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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교(摩尼教, 페르시아어: آیین مانی Āyin e Māni 아이인 에 마니, 영어: Manichaeism 매니키이즘[*][1])는 사산 왕조(226~651) 시대에 성립된 주요한 페르시아 나스티시즘 종교들 중의 하나로, 현존하지 않는 고대중세의 종교이다. 마니교의 창시자인 예언자 마니(摩尼, 페르시아어: مانی, 시리아어: ܡܐܢܝ, 라틴어: Manichaeus 마니카에우스[*] 또는 Manes 마네스[*]: c. 216~276)가 저술한 원래의 저작은 대부분이 상실되었지만 다수의 번역서와 단편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마니교에서는 선하고 영적인 빛의 세계와 악하고 물질적인 어둠의 세계 간의 투쟁에 대해 설명하는 정교한 우주론을 가르쳤다. 이 우주론에 의하면, 인간의 역사에서는 또는 영성물질성의 투쟁이 계속하여 발생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또는 영성이 그 대립물인 또는 물질성을 극복하게 되며 이에 따라 ( 또는 영혼의 에센스)이 물질의 세계로부터 점차적으로 철수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그 자신이 발출되어 나왔던 본래의 원천인 빛의 세계(world of light)로 되돌아가게 된다.

마니교는 기원후 3세기에서 7세기 동안 융성하는데, 그 절정기에는 가장 널리 퍼진 세계 종교들 중의 하나였다. 마니교는 동쪽으로는 중국까지, 서쪽으로는 로마 제국까지 전파되어 이들 지역에 마니교 교회와 경전이 있었다.[2] 서양에서는 마니교가 비교적 빨리 사라졌지만 동양의 경우 중국 남부에서는 14세기 이후에야 최종적으로 사라졌다.[3] 이는 경교(景敎) 또는 네스토리우스교라고도 불리는 동방의 교회(Church of the East)가 중국에서 쇠퇴하여 사라진 것과 동시대의 일이다.

본래 마니에 의해 시리아 아람어로 저술된 여섯 권의 마니교 경전은 마니교의 전파를 용이하기 하기 위해 곧 여러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다. 마니교가 동쪽으로 전파되면서 마니교의 경전들은 중세 페르시아어 · 파르티아어 · 소그드어 · 토카리아어로 번역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위구르어중국어(한문)로 번역되었다. 서쪽으로 전파되면서는 그리스어 · 콥트어 ·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마니교의 전파와 흥기는 다른 종교들에게는 위협으로 여겨졌는데 그 결과 마니교는 기독교 · 조로아스터교 · 이슬람교 · 불교 문화권에서 박해를 받았다.[4]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는 고대에 존재하였던 혼합주의적 종교 운동 중 하나로,[1][2][3]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불완전한 신인 데미우르고스가 완전한 신의 영(프네우마)을 이용해 물질을 창조하였고, 인간은 참된 지식인 그노시스를 얻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조를 지닌다.

1945년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되고 그 이후 이들 1차 문헌들을 토대로 영지주의가 현대의 학자들에 의해 새로이 조명되기 이전에는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는 영지주의를 논박하는 기독교 교부들의 논서들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했다.[4][5] 이들 논서들에서 영지주의는, 정통파 기독교에서 세력을 얻지 못하는 좌절을 겪은 배교자들이 창시한, 타락된 형태의 교의를 가진 기독교의 한 이단인 것으로 대체로 서술되고 있다.[6] 반면,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영지주의는 교의 체계가 다양하여 특정 한 종교 분파 또는 단체로 묶을 수 없으며 기원 또한 기독교로 국한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7] 그러나 영지주의 종교 운동이 가장 활발히 전개된 시기는 기독교가 태동하던 기원후 1세기부터 3세기까지의 시기로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 하에 전개되었다.

정통파 기독교와 영지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는 정통파 기독교에서는 구원이 "믿음(신앙 · faith)"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반면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이 "(gnosis 그노시스[*])"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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