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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들

한니발 & 스키피오

by 링마이벨 2024.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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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간접 자본중 가장 기여를 한 것은 다름아닌 로마의 도로 아피아가도 일것이다. 아피아 가는 동맹국 속국을 분리 하지도 차별하지도 않았다. 로마는 토지를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았고, 누진세금도 없이 수입의 1/10만 세금으로 내면 됐기 때문에 더나 덜 내려고 꾀를 부릴 이유도 없었다. 로마가 원칙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아피아가도와 군대에서도 나타난다. 로마가 원칙을 중요시하고 전혀 유연성이 없는 민족의 성격으로 그래서 로마가 "pax Rome" 가 형성되었고 이민족에 관해서도 하나의 원칙 거대한 융합정책을 펴 왔던 것은 그 당시로 봐서도 얼마나 큰 생각을 가진 민족이지 싶다. ``````

이런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민족과 변동성과 유연함을 가진 사람과의 전쟁은 애초에 승리가 명확해진다. 바로 이러한 변동성을 가진 사람이 한니발 인듯 싶다. 저기를 코끼리 때를 몰고 3만6천에 이르는 보병을 데리고 넘어왔다는 것 , 아마도 베트남전에 쓰였을 법한 그러한 전쟁의 법칙들이 아마도 불가능한 영역에서 발생한다는 것. 아마도 그건 엄청난 상상력과 엄청난 카리스마로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것 , 불만을 잠재우고 그 전쟁의 주도권을 가져왔다는 것은 아마도 넘 신선하고 넘 완벽하기 까지 해 보인다. 

또한 로마의 강점인 민족의 융합이라는 전쟁의 원칙에 가장 강한 고리를 파고들어가 로마의 정복민을 아군으로 받아서 지속적으로 로마전의 용병으로 확보했다는 것은 두가지 강한고리를 끊고 들어간 것이다. 가장 강한 인식의 고리를 박살내 버린 것이다. 가장 강한 부분을 박살내 버리는 한니발의 전략은 아마도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한니발이 마지막에 자바전투에서 스키피오 장군한테 패배 했을때 펴저리게 느낀것이 다름아니 융화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쉽사리 그 융화정책을 깨드릴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니발은 그가 만든 병법으로 결국은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에게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이민족에게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융화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누가 더 본능에 충실한 전략을 구사했는지 ? 

아마도 기원전 2~3세게 로마를 그 누구보다도 강인하게 만들었던 것은 한편으로 한니발의 공일 것이다. 로마민족을 단련시키고 이민족의 여러 정채과 다양한 전쟁의 모습을 만들어 훈련시키고 강화시키 덕이 아무래도 포에니전쟁을 통하여 강화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 중심에 한니발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그 전까지 로마는 정직한 수학공식을 풀어가듯 명확하고 반듯한 전쟁을 해왔지만 한니발의 다양한 전쟁수행능력으로 수많은 패배를 통해서 위험에 대비하도록 훈련 받은 것이다. 

알프스를 넘어온다거나 급습을 자유자재로 하고 기병을 쓰는 능력이나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이전에 전쟁에서 보지 못하던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서 단련되어진 것이다. 이런 다양한 위험에 있어서 로마가 가진 탁월함과 어우러져 로마는 더욱더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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