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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에 대하여

by 링마이벨 202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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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다는 것은 가끔 상대성 원리가 적용되는 듯하다. 빠른 급류에서 아무리 빨리 노 젓는 다면 빠져나갈 수 있지만 아마도 빠른 급류에서는 아무리 빠른 속도도 느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간과 문명은 빨리 변하는데 그 속도로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뒤쳐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고 등산에서처럼 아마도 그 경주에서 금세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급류에서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계속 노를 저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급류를 안 탈 수도 없고 급류 때마다 계곡으로 보트를 짊어지고 움직일 수도 없는 지경이다. 그렇다고 노도 안 젓고 노를 계속 물속에 담가 두고만 있다면 어차피 배는 급류에 빠져들 것이고 노는 선미 옆으로 끌리면서 방향을 잘못 잡게 됩니다. 급류에서 안정성을 높이려면 노를 물의 호름만큼, 혹은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향을 바꾸려고 하거나 노틀 물속에서 끌 때마다 당신은 탄력을 잃고 배는 뒤집히기 쉬워집니다. 뒤집혀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자세로 급류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오늘날 변화를 관리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방향을 잡으려면 기술과 세계화, 환경 변화만큼 빠르거나 그보다 빠른 속도로 노를 젓는 수밖에 없다. 유일한 길은 ‘역동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전거를 탈때처럼 두 바퀴에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오히려 적절한 속도가 필요하고 속도가 핸들의 안정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치 사회적인 차원에서 물의 호름과 같은 속도로 노를 젓는다는 것, 그것은 ‘기술 외의 모든 일에서 혁신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일터와 정치, 지정학, 윤리, 그리고 공동체를 다시 상상하고 설 계하는 것이다, 혁신과 변혁 없이 또는 발질 없이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똑같이 또한 우리가 지금처럼 빠른 변화를 겪을 때 더 많은 시 민들이 더 오랫동안 더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바꿔놓는 가속화된 흐름에 보조를 맞추고 안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일터의 혁신이 필요하다. AI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과 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부분과 무엇을 기계와 ‘함께' 잘할 수 있는지 확인 하고 사람들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지정 학적인 혁신도 필요하다. 개인의 힘과 기계의 힘 흐름의 힘 그리고 힘 이 허약한 나라를 무너뜨리고 파괴자에게 강력한 힘을 실어주며 강한 나라들을 압박하고 있는 세계를 우리가 집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정치의 혁신도 필요하다. 산업혁명과 뉴딜, 그리고 냉전 시대에 대웅 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우리의 전통적인 좌 우파 정당 체제는 3중의 대가 속 시대에 사회적 복원력에 대한 요구를 층 족시킬 수 있도록 조정돼야 할 것이다. 도덕의 혁신도 필요하다 개인 힘과 기계의 힘이 너무나 커져 인류가 거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가치를 모두에게 확산시킬 수 있는지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혁신이 필요하다. 더욱 다양한 인구 구성을 촉진하고 정착시키며 더 건 강한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계약 맺고 평생학습 기회를 주고 정부一민간 파트너십을 확장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무조건 기계의 대치를 반대할 수도 없고 무조건 다 대치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이세돌의 바둑에서 만약 돌을 둘 때 아마도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내가 돌을 두는 한수 한수가 그에게 읽힐 때 본능적으로 이 대국은 진 게임인지 인정하기 싫지라도 패배를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AI도 결국은 인간의 누적 경험을 그 근거로 하기 때문에 그 밑바탕을 인간의 그동안 경험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밑바탕이 없이는 어떤 것도 그에게 그러한 Superpower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인간의 누적 경험치를 학습하고 databased 한 것이 그에게 무한한 힘과 에너지 경험 결국에는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ai는 모든 인간의 경험이 기본이고 그 경험이 그 근본을 이루게 한 것이다. 

 

느리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속도라는 것과 대입해 보면 인간을 가장 궁핍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이다. 속도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히 속도의 가치에 대비해서 잃는 것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중에 가장 큰것은 생각을 잃어버리고 과정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을 이루어 낸 것은 노동의 자유에서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단순노동에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삶을 돼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기계가 노동을 대치하면서 우리의 뇌는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꾸로 이제근 기계가 우리의 사고를 대신하면서 거꾸로 인간을 노동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의 가치가 퇘색하고 인간을 기계만도 못한 일회성의 기계로 대치시켜 버린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은 우리의 존재의 대한 가치와 존재에 대한 믿음이 많이 퇴보하게 된 것이다. 결국은 이러한 퇴보가 인간을 기계문명으로 다시 돌려놓을 것이고 인간은 그 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기계문명에 꼭 티베트의 수도승이 필요할지 그것에 대한 판단이 가부로 결정된다면 나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명의 수준에서 어느 수준에서는 더더욱 기계문명이 필요했던 아니 필요한 삶은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고 지속적으로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대치할 수 있는 시간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때가 도달된다면 인간은 무용하다는 결론이 도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는 것 같다. 인간이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경험하지 못하는 시간이 우리 앞에 오고 있다. 결국 인간은 인간을 위해서만이 존재하는 그러한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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