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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고깃집

by 링마이벨 202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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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은 내가 경험해본 잔인함과 과감함을 가지고 있다, 살해도 모잘라 부위별로 판매한다고 총 천연색의 카달로그를 고급스레 근접사진을 찍어놓고 잔인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육은 어찌보면 정을 주고 잘 먹여서 정성을 들여 키워서 잡아먹는 시스템인것이다. 돌봐주고 이뻐해주다가 가장 많이 사랑받을 때 도살하는 시스템인것이다. 나는 소고기를 좋아한다. 한입 물었을때 그 풍미를 그 포만감의 유혹을 어떻게 참아 낼 수 있을까? 고화질 사진으로 찍힌 그리고 잘 쓸어진 그 사진을 보며 첨 생각한다. 나의 육식은 이렇듯 합리화돼고 전혀 꺼리낌 없이 해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생각해 본다. 교육의 힘일까? 육식의 전통 탓일까? 습관이 만들어낸 아니면 매일매일의 반복된 무뎌짐일까? 생활속 편의일까?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오랜 생존의 터득으로 인해 상실한 미안함과 과감한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우린 미안함과 익숙함을 버린지 오래 돼었다. 채식에서는 볼 수 없는 칼로리 저장의 장기화의 이점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탓이리라!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미디엄 웰던 웰덤 하며 그 날카로운 이빨로 씹어댄다. 홍당무처럼 빨갛고 토시살, 치맛살, 그 아름다운 이름들로 가득한 부위들을 조금씩 조금씩 불판이 거무스레 약간은 태우고 약간은 덜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술과 같이 술은 인식을 마비시키고 뇌를 정지시킨다. 왜 페스티벌과 술은 넘 조화롭고 ㅇ우위를 따질 수 없을 지경이다. 흥을 돋구고 자리를 빛나게 할 때 술만한 것이 있을까? 아마도 없으니까 수천년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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