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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40

수육과 제육 까만고기를 수육 하얀색을 제육 수육은 소고기 제육은 돼지고기를 일컫는 다고 알고있다. 수육: 삶아내어 물기를 뺀고기로 어원은 아마도 熟肉(숙육) 즉 물에 삶은 고기가 아니라 익힌고기 당연히 돼지고기 수육도 있는것이다. 편육: 얇게 저민 제육: 돼지고기 猪肉(저육)의 어원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들 수육이던 편육이던 제육이던 모두가 잘 어울리는 술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재고할 여지도 없이 소주다. 나는 술병만 봐도 숙취가 생각난다. 그리 좋아하지도 즐기지도 않는 술이지만 이 병만 보면 구토증세를 일으키곤 한다. 식전에 이글을 쓸데도 그렇고 저녁에 심야에 보면 취할정도다. 벌써 숙취로 머리가 아파오고 약간 어지럽기까지도 하다. 이정도면 씽크율이 100%에 가깝다. 마치 원탁테이블에 앉아 술을 먹는듯한 기분.. 2018. 9. 26.
유물론 ​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 숙고한 삶으로 대변되는 내 삶의 투쟁의 결과요! 어제의 반성한 오늘이요! 내일로 가는 그 기본이 돼는 기본값이요! 오늘의 나는 어제 질량중 152kcal가 없어진 결과요! -152kcal의 어제의 결과요! 나의 오늘이요 어제의 나요 내일의 나이다. 어떻게 해야지 잘 살수 있을런지 고민해야 하는 오늘의 나요 나임을 철저하게 느끼는 나이다. -152kcal는 공기중으로 없어진것일까? 공기속으로 내 옷속으로 흡수 합병된것인가? 내 옷이 공기속으로 뱉어낸 입자인가? 그 입자속으로 철저하게 스며든 미립자이자 분자 원자이란 말인가? 참으로 안타롭다. 2018. 9. 25.
이가을의 벤치는 ​얼마나 추루하고 외롭고 잊혀지기 쉽지 않았던가? 익숙한 저 의자에 잠시라도 머리를 기대고 앉았노라면 우리는 또 얼마나 우리를 낯설게 바라 보았을까? 삶이 잠시 앉었다가 일어서고 눕는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나의 삶에 책임지고 나는 의자에 앉아있기보다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땀흘리게 살았을 것을 왜 진작 나는 알지 못했던가? 2018. 9. 24.
비교 우리기 삶을 살면서 가장 많은 불황을 겪는것은 바로 metaphor의 삶 ​ 이 마른이 의 갊이 방금 떨어진 단풍도 돼기전 이 단풍의 삶보다 못하다고 누가 여기겠는가? 이 생기있는 단풍잎이 마른잎 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수 있겠는가? 초가을 단풍의 절정을 기억도 못하는 이 푸른 단풍나무 잎을 똑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또한 둘다 모두 하찮다고 이야기 한다면 누가 이 나뭇잎이 그동안 그 하늘을 푸르르게 했다는 것을 누가 기억이나 하겠는가? 단순히 우리처럼 100년의 기억도 제대로 못했었던 생물종이 얼마나 이 자연의 한 부분으로 전체인것 마냥 세상을 살았다는 것을 인간에게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우린 또 얼마나 하찮코 쓸쓸하게 우리삶을 여길수 밖에... 우리는 우리를 저 마른 낙엽처럼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2018.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