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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43

나이듦 고독속ㅇ에서 그대 자신이 군중이 되어라. ​ 자기자신을 아끼고 여기는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정시네 나는 오직 나만을 위해서 산다. 행복과 불행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 매일매일을 마지막 날로 생각행라! 언제라도 장화를 신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죽음은 인생의 끝일뿐 목표는 아니다. 철학이 아무리 높은 경지에 다다라도 우리가 그 위에 자리 잡을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의 관습과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편안하게 사는데 학식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 죽음은 얼마나 기습적으로 다가오는가? 고독한 명상과 독서속에서 비로서 온전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의 존재에도 영원 불변한것은 하나도 없다. 우.. 2018. 1. 28.
나이듦에 관해서 나는 웅장하고 장엄하고 화려한 쾌락보다는 그윽하고 손쉽고 바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원한다. "우리는 어떤일에도 좋은 안내자가 돼지 못하는 세상사람들의 의견을 쫓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에서 멀어져 간다." 나자신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말에 공감한다. 죽음은 우리의 삶 도처에 끼어들고 뒤섞인다. 2018. 1. 28.
소신 소신이란 말이 자꾸 나온다. 소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유를 억압하던 시절에 일제 강정기 6.25 전쟁에서 잦은 외침을 당하던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 볼때 이러한 경험들이 좀더 이러한 의지를 약화시켰던 것 같다. 1900대년대초 부터 있었던 일제의 잔혹한 통치 분열정책 앞에 사실은 개인적인 자유로움과 소신이라는 것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상당히 오려 걸리는것 같다. 설상가상으로는 복귀가 전혀 불가능한 사실이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의 머리속에 아버지의 머리속에 그 당시 상황 배반 배신과 그할아버지 그 아버지가 잔혹한 정치를 해왔고 그러한 정치가 이제 2017까지도 할아버지의 삶의 방편들을 아버지가 어떤 정치적인 어떤 개인적인 반성도 없이 역사가 흐르다 보니 이제는 그 손자까지도 그러한 부를.. 2018. 1. 28.
공간 내가 살면서 만족하는 공간은 몇평일까? 이 넓은 우주 세계 한국 서울 이 공간 지금 내가 앉아있는 0.2평 이 공간으로 내가 지구의 중력을 느끼고 내가 발을 딛고있는 이 공간 그런데, 나는 왜 욕심을 부릴까? 왜 취기오린 낯으로 세상을 살고있을까? 만족이란 어떤 것일까? 서있거나 누워 있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한 이 공간 이 한평도 안되는 존재에 욕심이 어마뭇하지! 그러니 영웅이란 그가 세상을 품는 존재니 얼마나 그러한 존재에 햇빛을 쬐고 있다. 편치도 싫지도 않은 그러한 존재 말이다. 나는 0.2평도 안돼는 존재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지구를 삼켜버릴듯한 욕심과 우주의 생각과 걱정을 가진 한 낱 인간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러한 인간임이 너무 자랑스럽다. 그런 인간이란것에 대해... 2018.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