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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I 시대 외로움이라는 화두

by 링마이벨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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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초를 다투며 사는 핵개인의 시대. 

디지털이 던져주는 분초사회,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지 않고 찰랑찰랑 버스가 도착하자 마자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앱을 켜서 약속장소에 칼같이 도착하고 커피는 모바일로 주문해 바로 받아서 커피를 마시며 차는 엘리베이터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해서 바로 올라가고 또 바로 내려와 차를 타고 뉴스는 필요한것만으로 이미 나의 인터넷은 나의 친숙함으로 모두 포장되고 평소 내가 싫어하던 이와 거리끼던 모든 것은 내 눈에서 사라지는 세상 

차를 기다리면서 느꼈던 많은 사회의 움직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인에 대해 받아들여야 했던 상황에서 내가 세사을 통제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지금 이 전지전능함이 ai가 일상의 보조자에서 나 마저도 철저히 객관화되고 나도 거대한 기계의 process의 한과정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정이자 부품화 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보다 중요한 것이 process로 인식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파고는 현재 50-60대에서 느껴야 디지털 외로움이라는 것이다. 코로나가 휩쓸고 불황이 휩쓸고 간 이중파고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최초의 디지털 고립감과 외로움의 쓰나미를 느껴야 하는 것이다. 가족간의 부양과 돌봄은 역할이 줄어들을 수 밖에 없다. ai는 고도로 지능화된 파편을 조장하고 디지털이라는 합리적 도구는 아마도 "바라만 보아도 알아! "라는 情 마음을 해독할 능력은 없지만 마음은 안다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情' 때문에, '사랑'때문에 라는 말은 사라질 것이고 모든 감정은 하나로 통일될 것이다. ai때문에 ai가 ai 에이 최근에 길거리에서 a e i o u라는 브랜드를 본적이 있다. 에코백에 쓰여져 있었는데 우리가 영어에서 배우던 모음들로 따로 떨어져 글자가 안될 것 같은 애들끼리 모여서 그룹을 만든 모습이 너무나 인지부조화 작용이 일어났지만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a e i o u "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라는 말이 잇몸으로 언제든 살 수 있을 준비가 된것이다. 아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어떤 숙명인지 인류는 살아 나가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주변 환경은 모두 변하였지만 어떻든 인간의 적응력은 놀라워 바로 이러한 ai든 post corona든 더 가열차게 살아나갈 것이다. 거창한 미래학자든 마케팅을 연구하던 간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고 내일을 생각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외롭고 힘들것이다. 기계가 내 주변을 하나씩 하나씩 대치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ai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마도 가치와 유용성이지 않을까? 뻘짓 뻘 스러움을 철저히 배격하는 기계적 효용성, 그 가치들을 추구할 것이다. 기계라는 단순히 만약에 솔로몬같은 현자가 필요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아마도 가장 비인간적인 결정들을 할 수 있는 때가 온것이다. 인간의 외로움 고독감은 사실 나의 개인적인 삶에 처한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대개는 우리가 이야기 하는 상대적인(relative) 박탈감인 것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통해 나에게 전해 오는 것이다. 

1-2년 후에 이러한 data가 나오지 않을까? 동북쪽으로 나아가면 귀인이 생길것이다. 
오늘 당신은 이러한 일로 많이 실망할 것이고 H를 만나면 당신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기 때문에 오늘은 가급적 대중교통을 타고 당신에게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은 파란색, 노란색이고 직장상사와 사소한 언쟁이 있으니 언쟁은 삼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조만간 AI는 미래를 이야기 하며 그동안의 DATA로 당신의 행동거지를 장악할 것이다. 

결국 운명을 이야기 할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기게에게 디지털에게 바라는 바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미래는 항상 불안하고 예측이 안돼니까? 말이다. 나는 인간의 문명이 무너지는 것은 다름아닌 속도라는 마약에 우리뇌가 적응을 하면서부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뉴스중 사고가 날때 '대본을 읽지 못할때' 또는 당신이 일생일대의 면접을 보고 있을때 그 찰나라는 시간은 아마도 물리적인 크기가 아니고 아마도 심리적이고 모든 것이 느끼는 모든 것이 전부인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 그 물리적인 발명품은 아마도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었지만 인간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모든것을 빼앗아 갔다. 사물을 명명하는 것 이름을 만드는 순간 인간의 상상력은 사라졌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에게 하나의 형식이 생기고 그 형식이 결국에는 본질을 집어 삼키는 역전 현상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본질과 그에 걸맞는 이름 하지만 항상 본질을 대치하는 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편의성이 그 유용함이 항상 본질을 앞도하고 주객이 전도돼기 때문이다. 본질과 형식, normal 과 abnormal , ok와 not, 단어 자체의 상상력과 그 은유는 인간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기계는 천편일률적으로 현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인간과 같은 다양한 해석 본질에 다가서려는 노력들이 항상 중요한 가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조만간 기계는 이 불필요한 중간 과정들을 다 생략할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간도 그 본질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외롭고 힘든 것이 아닐까? 내가 가진 수많은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하나로 표현되는 또는 하나일 수 밖에 없는 나의 감정들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또한 중요하게 다루어 질 수 없다는 것에 처음에는 분노가 일다가 종국에는 그 분노마저 사라질때 우리의 존재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ai가 느끼게 하는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많은 외로움을 수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스스로 우리의 존재를 우리의 심연을 ai에게 여러가지 다양성을 그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우리는 그들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 막힌 하늘 콘크리트 벽사이에서 넓은 하늘을 보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Written by: Neil Diamond

Lonely lookin' sky
Lonely sky, lonely looking sky
And bein' lonely
Makes you wonder why
Makes you wonder why
Lonely looking sky
Lonely looking sky
Lonely looking sky

Lonely looking night
Lonely night, lonely looking night
And bein' lonely
Never made it right
Never made it right
Lonely looking night
Lonely looking night
Lonely looking night

Sleep we sleep
For we may dream
While we may
Dream we dream
For we may wake
One more day
One more day

Glory looking day
Glory day, glory looking day
And all it's glory
Told a simple way
Behold it if you may
Glory looking day
Glory looking day
Lonely looking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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