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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들

3.1운동 일백주년 호남의병 [고광순장군님]

by 링마이벨 2019.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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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아마도 구글검색중에 올라온 사진 중에 가장 근접한 사진으로 이랬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고경명의 12대손으로 1848년에 태어나셨네!  폴고갱이 예술가로 태어나 모든걸 등지도 타히티에 놀때 60세의 나이로 일본왜놈과 호남에서 의병활동을 하시다 돌아가셨구나! 폴고갱이 painting 할때 이분께서는 태어나셔서 홀로 어려운 길을 걸으셨구나! 일단은 감사합니다. 큰 조상님 1848년 거의 지천명의 연세에 홀로 일어나셔서 왜적과 싸우셨으니 참으로 안타깝지만 손주보실 나이에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구례 연곡사에서 최후를 맞이하셨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연곡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생각해보니 구례는 지리산의 입구이자 하동으로 가기 쉽고 사실 지리산은 너무 많은 주변지역을 안고 있으니 말이다. 구례읍 냉천리 등이 있으니 말이다. 어찌보면 쓰시마가 제주도 보다 가까우니 얼마나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쉬웠을까? 왜적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올 수 있을것으로 보이는 구나!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구나! 나라위해 목숨바친들 모진 일본의 고문에 못이긴들 나라 지킨 한 의병장을 어떻게 국민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지금도 이럴까? 나라지켰는데 이후로 100년이 지나 후배놈들이 사당을 이렇게 관리하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한스러우실까? 일본 앞잡이 하던 놈들은 대규모의 기업을 이루거나 지금은 한 회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안타까운 일이로다. 

이러한 태극기를 몸에 품고 육순의 몸을 이끌고 결사항전을 하였다면 이분은 얼마나 위대한 꿈을 꾸셨던 분 이셨을까? 20세 약관의 나이에 폭탄을 품고 총을 겨누었다면 우리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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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ê³ ê´‘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아마도 지리산 단풍이 들었을 이즈음 일본군과 이러한 산을 배경으로 처절히 싸웠으리라 생각한다. 육십이라는 노구에 일본 왜적들과 20살 애들 일본애들과 목숨을 걸고 광주와 하동의 일본군을 상대로 말이다. 참으로 상상만해도 어처구니 없고 얼마나 힘이 드셨을지 여러모로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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