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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들

아스파시아

by 링마이벨 2024.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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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당시 아테네인들의 여성관은 여성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오로지 멸시와 무시로 일관했었다. 오히려 스파르타에서는 여성이 짐나지움에서 운동도 하고 전쟁을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한 인간으로 삶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하면 오히려 아테네에서는 여성은 창녀로 전쟁을 위해서도 걸리적거리고 음습한 한 인간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에 어느정도 반기를 들고 여성들과 사상을 교환하고 토론을 하며 대등하게 그들과 지냈던 한부류의 사람들이 페리클레스와 소크라테스였다고 한다. 아마도 동양의 경국지색에 비할 수 있는 여인으로 내가 보기엔 클레오파트라의 먼 조상인듯 보인다. 성향이 말이다. 왜 아테네는 여성에 대해서 이토록 냉정하였는가는 잘 설명이 돼지 않지만 어는 정도 이해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라이벌로 대립각이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스파르타의 남성상은 그러한 갈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테네인들에 마초이즘으로 인식되어 오히려 아테네인들에게는 스파르타남자의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자든, 남자든 간에 말이다. 아테네가 주변에 민주주의를 이식하고 제국주의를 꿈꾸어 왔다면 사실은 스파르타는 오히려 지속해서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강자인 아테네를 지속하여 괴로혀 왔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의 같은 점은 아스파시아 곁에는 아테네 최고의 정치인 페리클레스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과 달랐던 점은 아스파시아는 그렇게 거친 문화적 멸시속에서 나름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전혀 굴하지 않고 외부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아테네 문화에서 여성으로 아니 한 인간으로 자기 소리를 내면서 살았다라는 것이다. 미모와 대화 지식을 겸양을 갖춘 여인으로 말이다. 아테네는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국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혹 스파르타는 전쟁을 위해서 여성을 전쟁의 소모품으로 귀하게 생가했는지는 몰라도 곁에서 볼때는 아테네 보다도 스파르타의 편을 더 들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상도 하게된다. 아스파시아는 귀한 자녀였지만 전쟁으로 인해 노비가 되면서 하나의 사교계 여인의 명성과 issue making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라는 상상을 해본다. 어차피 이 모든것이 정확한 기록이 아니라 상상의 소산이니 말이다. 광장에서 꽃핀 민주주의와 그리고 그 수많은 말의 중요성을 어느때보다 중요한 때라 그 말을 잘하고 너무 pretty한 여인이 얼마나 매력이 있었을까? 더구나 정치의 영역에서 질병과 스파르타에 매일 매일을 시달리는데 얼마나 신선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서인지 유달리 아테네는 주술에 많이 의지했던 사회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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